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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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남녀 테니스에서 위대한 챔피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가고 있다. 현재 미국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41, 미국)가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윌리엄스는 지난 3일 여자 단식 3회전에서 3시간 5분 접전 끝에 아일라 톰리아노비치(호주)에게 1-2(5-7, 7-6〈7-4〉, 1-6)로 졌다. 윌리엄스가 US오픈 단식 3회전에서 패한 것은 1998년 이후 이번이 24년 만이다. 윌리엄스는 지난달 미국 패션 잡지 보그와 인터뷰에서 은퇴를 시사했다. 이번 대회가 고별전으로 예고되자 빌 클린턴, 타이거 우즈, 마이크 타이슨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그를 보러 코트를 찾았다.  경기에서 패한 뒤 인터뷰에서 윌리엄스는 다시 경기에 출전할 가능성을 묻는 말에 “그럴 것 같지 않다”며 “정말 오래도록 내 인생을 테니스와 함께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은퇴를) 하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1999년 US오픈 단식을 제패하며 여자 테니스계를 평정한 윌리엄스는 20년 넘게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히며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무려 23번이나 우승했다. 윌리엄스의 전성기에는 웬만한 선수들은 윌리엄스를 상대로 한 세트는 고사하고 한 게임을 따내기도 어려워했을 정도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결승에서 마리야 샤라포바(러시아)가 윌리엄스에게 0-2(0-6 1-6)로 패한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그도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2017년 하반기에 딸을 낳고, 나이도 40세를 넘기면서 조금씩 쇠퇴 기미를 보이더니 올해 US오픈을 끝으로 정들었던 코트와 작별했다.

세계남자테니스를 주도했던 ‘빅3’의 운명도 윌리엄스와 같은 길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년 넘게 군림하던 로저 페더러(41, 스위스)와 라파엘 나달(36, 스페인), 노바크 조코비치(35, 세르비아)를 이번 US오픈 8강 대진표에서 찾아볼 수 없다. 페더러는 무릎 부상 여파로 1년 넘게 대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고, 조코비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아 이번 대회 출전이 불발됐다. 나달은 16강에서 프랜시스 티아포(26위, 미국)에게 져 탈락했다.

‘무주공산’이 될 세계 남녀 테니스에서는 새로운 강호들이 속속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US오픈에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프로 선수들의 메이저 대회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이후 US오픈 남녀 단식 8강에 오른 16명 가운데 메이저 우승 경력이 있는 선수가 단 1명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남자 단식 8강에는 메이저 우승 경력자가 아무도 없고, 여자 단식에만 이가 시비옹테크(1위, 폴란드)가 유일하다. 남자 단식 8강에 오른 선수 중에서는 1995년생 닉 키리오스(25위, 호주)가 최고령이다.

이 같은 세계 남녀 테니스의 새로운 판도를 한국 테니스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세계스포츠 강국으로 평가받는 한국이지만 아직 테니스에서만은 다른 종목에 비해 세계 경쟁력이 매우 취약하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2년간 허리부상으로 뛰지 못했던 정현(26)이 이달 말 코리아오픈 복식에서 권순우(25)와 한조로 출전, 다시 선수활동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2018년 호주오픈에서 조코비치를 물리치고 한국 선수로는 최초인 메이저 대회 4강에 진출했던 정현은 그동안 활동이 없어 세계랭킹 조차 없다. 앞으로 정현을 비롯해 한국 남녀 테니스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용틀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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