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image

한가위,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풍성한 들녘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도 풍성할 때다. 특히 올 한가위 보름달은 백 년 만에 한번 볼까 말까 하는 밝고 큰 달이 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불과 며칠 전 남부 지방을 휩쓸고 간 태풍 ‘힌남노’가 적잖은 상처를 남겼지만, 태풍이 지나간 뒤의 바람은 완연한 가을이다.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내려놓고 바라보는 하늘도 맑다 못해 눈이 부시도록 청명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보면 한가하게 한가위 같은 소리를 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한가위 연휴를 앞둔 지금 한국은 다시 ‘정치적 내전 상태’로 가는 듯한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 때도 같은 표현이 나오긴 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불과 4개월 만에 재연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윤 정부 임기 초라는 점에서, 그럼에도 윤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30%대 안팎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문 정부보다 심하다. 더욱이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검사 출신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우왕좌왕하면서 민심을 잃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앞으로는 해법을 찾기조차 어렵다. 국정운영의 새로운 동력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내전상태, 그 심각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가처분신청 공방으로, 민주당은 당 대표 경선으로 보냈던 뜨거웠던 8월을 보내고 9월을 맞는 첫날, 언론에 공개된 한 장의 사진이 향후 정국의 방향을 예고하는 듯 보였다. 윤석열 정부 첫 정기국회 개회식 날, 본회의장에 앉아 있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휴대폰이 켜졌다. 거기엔 이 대표 보좌관이 보낸 문자가 와 있었다. “백현동 허위사실공표, 대장동 개발관련 허위사실공표, 김문기 모른다 한거 관련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는 문자였다. 이 대표가 당선된 지 불과 나흘 만에 온 검찰 출석요구서다. 이 대표 보좌관 표현대로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이재명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을 조사한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으며, 일주일 뒤인 7일 김씨는 검찰청에 출석했다. 앞서 경찰은 법인카드 직접 사용자인 배 모씨와 그 ‘윗선’으로 의심받아온 김씨 사이의 범행에 대한 묵시적 모의가 있었다고 보고, 김씨를 이 사건 ‘공모공동정범’으로 검찰에 넘긴 상태였다. 검찰과 경찰만 나선 것이 아니다. 감사원은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전현희 위원장의 국민권익위에 대한 감사를 두 차례나 연장했다. 벌써 한 달 이상 감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전 위원장은 “국민권익위 업무의 독립성과 임기가 정해진 법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지 피눈물이 흐른다”는 심경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민주당도 총을 들었다. 이재명 대표 보좌관의 표현대로 ‘전쟁’을 알리는 총탄이 날아들자 전열을 재정비한 민주당이 반격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지난 5일 고발장을 냈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민주당 당론으로 ‘특별검사법’을 발의했다. 현실적으로 이번 특검법은 국회 문턱도 넘기 어렵지만, 정치적 내전 상태로 가는 ‘무기’로 활용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김 여사와 관련된 여러 의혹을 보면 민주당의 특검법 발의는 만만찮은 무기로 보인다. 게다가 여론까지 호응한다면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될 여지도 남아있다. 따라서 정치권이 초강경 대치와 정치 공세, 고발과 정쟁 등을 동원한 사실상의 ‘정치적 내전상태’로 가는 결정적 단면인 셈이다.

정치에서의 ‘협치’는 이제 말을 꺼내기도 어렵게 됐다. 그렇다면 경제는 어떨까. 그동안 전문가들이 수차례 언급했던 ‘퍼펙트스톰’이 가시권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부의 강력한 방어 의지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8일 오전 1382원을 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의 최고치다. 무역수지는 이미 수개월째 적자로 돌아섰다. 이대로 가면 경상수지도 위험할뿐더러 고물가 기조를 방어하기도 어렵다. 결국 재정건전성까지 위험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가계부채는 이미 시한폭탄으로 다가오고 있다. 물론 국가부채도 단기성 부채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재정과 금융 모두에서, 그리고 오랜 경기침체로 인해 ‘실물 부문’까지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이처럼 한국경제 전반에 걸쳐 복합적 위기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인식은 안일하다 못해 무능하다. 지난 5월 윤 대통령 취임식 직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기존의 군사동맹을 넘어 ‘경제동맹’까지 한미관계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고 자화자찬했던 윤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의해 뒤통수를 맞았다. 현대와 기아차의 황당함을 넘어, 한국과 한국 국민에 대한 ‘배신’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허겁지겁 미국을 방문해서 호소하는 모양새는 앞으로의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거의 절망에 가깝다.

결국 관건은 ‘정치의 복원’이다. 정치가 바로 선다면 미국의 배신 행위도 바로 잡을 수 있다. 복합적 경제위기도 국민과 합심해서 돌파해 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지금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것이 ‘정치의 힘’이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이미 내전 상태로 들어서고 말았다. 어느 한 쪽이 죽어야 다른 쪽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전쟁’이다. 대신 이러한 소모적 전쟁으로 인해 국민과 민생은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어디에 호소해도, 누구에게 외쳐도 소용이 없어 보인다. 국민은 결국 ‘각자도생’일 뿐이다. 국민이 선택한 권력, 그 권력에 의한 전쟁의 참상이 벌써부터 한가위 보름달에 그대로 새겨질 것 같아 달을 보는 것조차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키워드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