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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AP/뉴시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향년 91세의 나이로 모스크바 중앙임상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은 2004년 12월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독일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 

 소련 개혁·개방군축으로 노벨평화상

러시아 일부에서는 배신자평가도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옛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30(현지시간) 별세했다고 타스, 스푸트니크,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이 일제히 타전했다. 향년 91세이다.

스푸투니크 보도에 따르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심각한 오랜 투병 끝에 모스크바 중앙임상병원에서 이날 별세했다.

로이터통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갈라놓은 철의 장막을 제거하고 독일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미국과 서방 열강과의 협력 관계를 맺고 군축 협상을 단행했다고 그의 업적을 평가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31년 러시아 남서부 스타브로폴에서 태어났고, 모스크바 국립대 법대를 졸업했다. 공산당 소속으로 1985년 서기장이 됐다. 당시 54세 나이로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소련의 전제주의적 사회주의 체계로 운영되는 정치경제 체제를 개혁하고자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주의 세력에 균열이 갔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체결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군대도 철수했다.

그는 1989년 동유럽 공산주의권 국가에 민주화 바람이 불 당시 이에 대한 무력 진압의 명분이 됐던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했다. 같은 해 119일 베를린 장벽 붕괴 및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했다. 다음달인 12월 몰타에서는 역사적인 선언이 이뤄졌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담판으로 반 세기 가까이 지속된 냉전의 종식이 선언됐다. 양 정상은 이듬해 미국 워싱턴DC에서 다시 회동을 갖고 장거리핵미사일과 화학무기 등 감축에 합의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1990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최초였다. 같은해 한국과 수교를 맺었다.

그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서방에서 냉전 해체의 주역이자 평화 구축, 동구권 민주화에 기여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대한 자국의 평가는 갈린다. 국제사회에서 역사적 길을 걸어온 공적이 인정된 것과는 반대로 소련 해체를 만든 장본인, 혹은 배신자로 평가받기도 했다급진적 개혁 정책은 섣불렀고, 결과적으로 민족 갈등과 물가급등 및 마이너스 성장 등으로 소련의 붕괴를 초래했다는 이유에서 였다. 199112월 사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가 인테르팍스에 밝혔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31일 가족과 지인들에게 조의의 전보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지도자들은 신속하게 경의를 표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대해 자유 유럽을 위한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수년간의 고립과 박탈 끝에 소련 국민을 위한 길로 믿었다고 평가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현 우크라이나 사태를 인용하며 고르바초프의 소비에트 사회 개방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약속은 우리 모두의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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