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고 먹는 양은 예로부터 ‘감사함과 은혜를 아는 동물’로 불리운다. 또 양은 늙은 아비 양에게 젖을 빨리며 노후를 봉양하는 모습에서 ‘효(孝)’를 상징하기도 한다.

‘감사와 은혜’ 알고 민첩한 성수(聖獸) 

[천지일보=김지현 가자] 동양에서 양은 일찍부터 영수(靈獸; 영험스러운 동물), 혹은 신수(神獸)로 알려졌다.

양머리는 유교의 대표적인 희생물이다. 음력 봄 2월과 가을 8월의 첫 정일(丁日)에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인 석전대제에서 조(俎; 도마) 위에 담는 희생으로 양머리(羊腥)를 사용한다. 양은 소, 돼지와 함께 제물로 쓰였고 고기의 맛이나 질도 그만큼 좋은 상위권의 동물이다.

양은 가축으로서 말·소에 못지않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고대의 수메르·이집트·그리스·로마·게르만 민족들도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양을 중히 여기는 생각은 세월에 따라 성수(聖獸)의 경지까지 끌어 올렸으며 먹고 버린 뼈까지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시하는 영물로 간주됐으며 고이 간직하기도 했다. 양의 가죽 옷은 제후나 대부 등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만 입을 수 있었다.

또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고 먹는다. 그래서 예로부터 양은 ‘감사함과 은혜를 아는 동물’로 불렸다. 또 양은 늙은 아비 양에게 젖을 빨리며 노후를 봉양하는 모습에서 ‘효(孝)’를 상징하기도 한다.

양의 생김새에서 딴 상형 문자 ‘양(羊)’은 인간의 모든 기쁨을 포괄하는 글자가 돼 아름다움(美), 상서로움(祥), 착함(善), 의로움(義)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됐다.

▲ 대관령 양떼 목장에서 뛰어노는 양들.

양은 성격이 순박하고 평화를 연상하게 한다. 겁먹은 듯한 순한 눈망울과 복슬복슬한 털에 덮인 양떼는 ‘평화와 안락’의 상징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양은 또한 ‘정직과 정의’의 상징이다.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이 있다.

우리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라는 말이 있다. 양띠 사람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정의로워서 부정을 못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야생 양은 매우 ‘민감한’ 동물로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으며 경사진 곳을 잘 오르내리고 수영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놀라면 ‘민첩’하고 빠르게 도망간다. 주로 100마리 이상이 한 무리를 이루어 몰려다닌다. 여름에는 넓은 고지대로 올라가고 겨울에는 좁은 계곡으로 이동한다.

양은 소목(目)으로 분류되는데 소처럼 먹이를 되새김질하며 위는 4실로 나누어져 있다.
양은 개 다음으로 가축이 된 동물이다. 원래 신석기시대에 사람이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후 양이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순화돼 있었다. 중석기시대에는 염소와 함께 양을 수렵했는데 양은 먹이를 찾아 무리를 지어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젖을 얻은 동물은 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소의 뒤쪽에서 뒷다리 사이로 젖을 짰는데, 이것은 원래 양젖을 짜던 방법이었다.

동양의 고대 중국에서는 은(殷)나라 때부터 양을 식용하고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금나라에서 면양을 들여와 사육한 기록이 있다. 한방에서 양은 기(氣)를 돋우는 식품으로 보고 있다. ‘12띠의 민속과 상징’에서는 “6월은 양의 식욕만큼이나 왕성한 기운이 넘치는 때”이고 “6월에는 유두와 복날이 있고 대서와 소서가 있어 가장 더운 달”이라며 양의 따뜻한 속성과 연결지어 말하고 있다.

유목민에게는 양이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 중국 한족의 민족적·문화적 바탕은 유목 민족인 주나라에 있다. 그래서 중국 예법에는 양을 제물로 쓰는 일이 많다. 이 예법은 주나라 시대에 완성돼 유교를 타고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에 퍼졌다.

조선 ‘세종장헌대왕실록 128권’에도 중국 의궤인 오례의를 제사예법으로 정한 일이 적혀 있다. 양을 삶는 세발솥의 규격이 나와 있고 양을 제물로 쓰는 제사도 일일이 적어 놓았다. 종묘에서 임금이 몸소 지내는 제사에는 소 1마리, 양 4마리, 돼지 4마리를 쓰고, 대리로 지낼 때는 소·양 각각 1마리, 돼지 4마리를 쓰라고 돼 있다. 바람 구름 우레 비의 신과 산천 성황신에 올리는 제사에도 양을 썼다.

한편 돌로 양 모양을 새긴 양석(羊石)이 무덤의 앞쪽 양면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무덤의 십이지신상이 방위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양의 가장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희생과 속죄양(贖罪羊)’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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