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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산자(散子)’는 유과(油果)의 한 종류로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의 세찬이나 제사음식으로 쓰인다. 

산자(散子)를 ‘산자(饊子)’ 또는 ‘산자(糤子)’로도 표기한다. 찹쌀가루를 반죽해 납작하게 만들어 말린 것을 기름에 튀기고 꿀을 바른 후 그 앞뒤에 튀긴 밥풀이나 깨를 붙여 만든 유밀과의 하나로 흰색과 붉은색의 것이 보통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유선(類選)에는 ‘산자(糤子)’를 볶은 벼라고 칭했다. 말려서 볶는 것을 오(熬)라고 하는데, 찰벼(糯)를 껍질 그대로 솥에 넣어 볶으면 속에 들었던 쌀이 튀어 흩어지는 까닭에 산자라고 한다. 지금 풍속에 혹 기름으로 볶은 찹쌀을 통칭해 산자라고 하는데, 이는 제대로 되지 않은(不觚之觚) 말이다. 이 산자는 별도로 떡을 네모나게 엷게 만들어 기름에 볶고, 엿을 발라서 튀밥을 붙인다. 이를 산자라고 하는 것은 의의가 쌀에 있는 것이지 떡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양승암(楊升庵)은 이 산자(糤子)를 한구(寒具)라고 했다. 붙여서 떡으로 만든 모양이 비록 한구와 비슷하긴 하나, 이 산자라는 뜻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양승암 같은 박학(博學)으로도 이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또는 튀밥에 붉은 물을 들여서 비녀 모양으로 만든 떡에다 엿을 바른 것은 요화병(蓼花餠)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 형용을 따라 이름한 것이다.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 “여러 가지 안주에 삼사(糝食)도 끼어 있다” 하고, 자기가 주하기를 “조선 풍속도 중국의 미고(米糕)와 요화병 따위를 잘 만든다”하였으니, 이로 본다면 요화병이란 이름은 ‘중국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산자(糤子)는 만드는 방법부터 중국의 미고(米糕)나 요화병(蓼花餠)과는 전혀 다르다. 

산자(糤子)는 찹쌀가루를 반죽해 시루에 찌고, 방망이로 꽈리가 일도록 쳐서 공기를 넣은 후 얇게 밀어 3×3×0.5㎝ 정도로 잘라 말린다. 마른 산자 바탕을 기름에 튀겨 네모반듯하게 해 엿물이나 조청을 바르고 말린 밥풀을 튀긴 고물을 묻힌 것이 한과(漢菓)이다. 유과류(油果類)의 일종이다. 흰 밥풀고물을 묻히면 백산자(白散子)요, 밥풀고물에 지치물을 들여 묻히면 홍산자(紅散子)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연희와 제사에 반드시 쓰였다고 한다.

1450년경 의관 전순의(全循義, 생몰연대 미상)가 쓴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백산(白撒)’이라는 음식이 나온다. 찹쌀을 양을 마음대로 하여 물에 담갔다가 부드럽게 쪄서 치대어 밤톨만 한 크기로 떼어 소쿠리에 펴서 마르기를 기다려 기름에 튀겨서 쓴다고 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8(1462)년 1월 7일 유구국(琉球國) 사신에게 별하정(別下程)으로 흰 산자(饊子)를 내려 주었다고 한다.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백산자의 속명은 박산(薄散)인데, 전주(全州) 지방에서만 만든다고 했다. 맛있는 산자(糤子)를 만들기 위한 조건은 쌀이다. 호남평야의 곡창 지대에 위치한 전주는 조선시대에도 유과나 떡, 엿이 유명했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쌀알을 튀기면 마치 꽃처럼 부풀어 벌어지므로, 이렇게 만든 고물을 묻힌 유전병류(油煎餠類)를 산자(散子)라 한다”고 하여 음식명이 고물이 묻은 모습에서 붙여졌다는 내용이 있다. 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도 “찰벼 낟알을 튀기면 그 쌀이 튀어 흩어지기 때문에 산(糤)이라 하고, 이 산을 묻힌 과자이므로 산자(散子, 糤子)라고 한다”고 했다. 

산자(糤子)는 궁(宮)에서뿐만 아니라 사대부나 서민층에서도 가장 좋아한 대표적인 한과이다. 다만 주재료가 찹쌀이므로 특별한 날에 즐기는 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시대 궁중의 잔치와 제향에는 반드시 사용됐다. 왕족의 혼례, 왕의 사신 위로연, 제사 등 모든 왕실의 의례에서 사용됐다. 산자는 우리(于里)라는 제기에 담아 올리는데, 홍산자와 백산자를 한 그릇에 담기도 하고, 각각 따로 담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여러 산릉(山陵)의 사시대향(四時大享)과 정조(正朝)ㆍ한식(寒食)ㆍ단오(端午)ㆍ추석(秋夕)ㆍ동지(冬至)ㆍ납향(臘享)의 여섯 별제(別祭), 진전(眞殿)의 제품(祭品)으로는 제탁(祭卓)의 둘째 줄에 홍백산자 5그릇씩을 올렸다. -세종실록 29년 11월 2일

‘술 만드는 법’에는 찹쌀을 가루 내어 흰떡 반죽처럼 해 보자기에 싸서 솥뚜껑을 달궈 익게 쪄서 안반에서 꽈리가 일도록 밀어 만든다. 반죽이 식으면 만들기 어려워 두서너 사람이 급히 밀어 알맞게 만든다. 반죽을 베어 말려지질 때에 숟가락을 둘씩 가지고 눌러 지지면 매우 커진다. 1되 반을 해도 중간 크기의 산자가 300개는 나오고, 홍백산자가 보통 1그릇은 된다. 산자밥은 찹쌀을 희고 깨끗하게 가려 부수어지지 않게 가만히 씻어 담가 3일만에 건져 물기를 없앤다. 시루에 보자기를 깔고 건져 놓은 찹쌀을 놓은 후 술 1잔을 뿌려 잘 익게 쪄서 뚜껑이 있는 버들그릇에 쏟아 3일 만에 뜯어 말린다. 밥을 일 때 술기운을 축여서 일면 잘 일고 빛도 좋다. 지치물은 들기름에 내지 말고 참기름에 내라고 했다.

산자(糤子)나 강정 같은 유과류는 만드는 방법은 같고, 말리는 찹쌀바탕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완성된 산자는 네모반듯하게 크고, 강정은 손가락 크기 정도이다. 찹쌀은 불린 콩을 넣어 함께 빻거나 술을 넣고 반죽하기도 한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홍산자를 만들기 위한 고물은 지치를 가려 기름을 먼저 끓인 후 넣어서 알맞게 꺼내 큰 사기대접에 담고 매화 밥을 넣어 고루고루 묻히라고 했다.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는 고물을 만드는 다른 법으로 고운 모래(細沙)를 솥에 넣고 볶다가 뜨겁게 되면 지에 쪄서 말린 것을 넣어서 잠깐 함께 볶아서 빛이 누렇게 되기 전에 튀어 오르기만 하면 철로 만든 체에 친다. 그러면 고운 모래는 빠져 나가고 쌀알만 남게 된다. 이것을 산자에 묻힌다고 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좋은 찹쌀을 가루 내어 고운체에 쳐서 엿기름물을 조금 넣고 소금물에 반죽해 널빤지에 놓고 얇게 밀어서 패향(佩香)처럼 썬 후에 참기름에 넣어 지진다고 했다. 고물로 묻히는 밥풀은 좋은 찹쌀을 찧어 쪄서 지에밥을 지은 후, 밥을 말려서 기름 끓는 데 잠깐 넣었다 꺼내면 부풀게 되니 이것을 묻히면 된다. 지에밥에 지치물을 들이면 홍산자가 된다.

산자(糤子)는 산자바탕에 묻히는 고물에 따라서 백산자·홍산자·매화산자·세반산자·깨산자 등으로 나뉘고, 반죽의 재료에 따라서 메밀산자·묘화산자·감저갱자방(甘藷粳子方)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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