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제후의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초왕에게 진나라 소왕이 방문을 요구하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진나라 왕이 인척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이었다. 초왕이 진나라로 떠나려고 하자 굴원이 분연히 나서 반대를 했다. 진나라는 범과 같은 나라여서 도저히 믿을 상대가 못 됩니다. 제발 생각을 거두십시오. 그때 회왕의 막내아들 자란이 진나라 방문을 주장했다. 진나라와 친선관계가 모처럼 이루어지는 기회라며 왕을 부추겼다. 드디어 회왕은 진나라 방문길에 올랐다. 진나라는 초나라 회왕이 무관에 들어서자 곧 복병을 배치하여 그의 토로를 끊음과 동시에 회왕에게 영토를 떼어 줄 것을 요구했다. 회왕은 그 요구를 거부하고 틈을 보아 조나라로 달아나려 했으나 결국 저지당해 진나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회왕은 진에 억류당한 채 그곳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어서야 비로소 귀국 허가를 받았다.

회왕의 억류 중 초나라는 큰아들 경이 양왕으로 왕 위에 올랐고, 막내 자란은 영윤 벼슬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회왕에게 진나라를 방문하라고 사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영윤이 되었으니 그에 대한 비난이 높았다. 굴원은 초왕이 사치에 빠질 때부터 나라의 나약함 앞에 몹시 언짢았다. 궁중에서 비록 쫓겨났지만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고 회왕을 걱정하며, 초나라가 강국이었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했다. 그는 왕이 잘못을 깨닫고 나라의 기풍이 새로워질 것을 기대한 것이다. 굴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법과 희망도 없었다. 회왕은 죽을 때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왕이란 어진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을 불문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신과 어진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국가가 멸망하는 경우가 많다. 몇 대에 걸쳐 바른 정치를 해도 성군이 다스리는 세상이 오기란 어렵다. 그 까닭은 충신이 충신이 아니고 어진 사람이 실은 어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왕도 충과 불충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궁중에서는 현수 부인에게 현혹되고 대외적으로는 장의에게 농락당한 것이다. 굴원을 멀리하고 상관 대부나 막내아들 자란의 말을 믿었다. 그 결과 군사들의 수는 줄어들고 영토도 빼앗겨 여섯 고을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진나라에서 객사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영윤 자리에 오른 자란은 굴원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상관 대부와 짜고 형 양왕에게 중상모략을 했다. 굴원은 도읍에 살지도 못하고 강남으로 쫓겨났다.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강변을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굴원의 얼굴은 초췌하고 몸은 마른 고목처럼 수척해 있었다. 어부가 굴원을 보고 말을 걸었다. “당신은 삼려 대부가 아니십니까? 어찌하여 이런 초라한 곳에 계시나요?” “세상이 혼탁한데 나 혼자 맑아 그렇다. 모든 인간들이 잠들어 있는데 나 혼자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난 것이다.”

굴원의 말에 어부가 다시 반문했다. “세상의 사물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성인의 사는 방법이라고 들었습니다. 세상이 어지럽다면 어찌 그 흐름에 맡기지 않습니까? 또 모든 인간이 취해 있다면 어째서 술이라도 마시고 스스로 취하지 않습니까? 가슴 속에 주옥을 품었으면서 어째서 쫓겨날 짓을 하셨습니까?”

굴원이 말을 받았다. “세수하고 몸을 씻은 다음에 모자의 먼지를 털고 의복의 먼지를 털어 입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깨끗한 몸을 결코 더럽힐 수는 없다. 그런 짓을 할 정도라면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밥이 되는 편이 낫다. 어찌 더러운 세속에 몸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굴원이 지은 글이 회사부(懷沙賦)이다. 굴원은 그 글을 짓고 돌덩이를 품에 안고 멱라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가 죽은 뒤 초나라에는 ‘송옥’ ‘당늑’ ‘경차’ 등의 문인들이 세상에 나왔다. 그들은 모두 글을 좋아하고 특히 시에 뛰어나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으나 굴원의 문장을 흉내나 낼 뿐 나라의 정치를 비판하는 용기는 갖지 못했다.

그 뒤에도 초나라는 날이 갈수록 영토를 잃어 수십 년 뒤에는 결국 진(秦)나라에 멸망당했다. 굴원이 멱라에 몸을 던지고 백 년이 지나 한나라의 가생이 장사왕의 태부가 되어 상수를 지날 때 시를 지어 물속에 던져 굴원의 영혼을 달랬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