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신(新)한일관계를 선언했다. 77주년 광복절 경축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일본을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규정했다. 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해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액션 플랜은 없었다.

전범국가인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보상이나 사과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불충분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다가 불쑥불쑥 새로운 피해를 언급한 우리 외교의 미숙함도 인정해야 한다. 최근 한일문제의 발단이 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1965년 국교정상화 때는 양국이 모두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다. 이 때문에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주장을 했고,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한일 청구권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사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당연히 국가적 차원의 보상을 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일본 내부에서 이에 대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라야마 정권이 고민 끝에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었고 기금에서 보상을 받으려는 분에게는 총리의 사죄 편지도 동봉해 보내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 차원이 아닌 국민기금으로 보상을 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박근혜 정부 때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도 정치권 의도와 달리 피해자가 배제된 협상은 피해자들의 분노만 키워 양국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박근혜 정부 뒤이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일본에 더욱 강경했다. 그러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갑자기 유화적 태도를 보이자 일본은 오히려 당황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이웃이라 칭하며 관계 개선을 희망한 날, 일본 총리는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전범국가인 일본의 총리가 반성 한마디 없이 전범자를 추모한다는 점은 참으로 유감이다. 그래도 국익을 위해 또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한일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 가능한 기본적이고 변치 않을 대일관계 원칙이 절실하다. 일제 피해자의 범주와 보상 기준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조사와 기준이 있는지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 우파 정권 60년을 유지한 일본은 외교적 변화에도 느리게 반응한다. 이런 일본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 정부가 일관성 있는 협상과 관계 개선을 유도할 때 양국 관계 개선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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