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종, 에밀레종은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다. 설화에 따라 에밀레종으로 부르거나 봉덕사에 걸려 있던 종이라 봉덕사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원한 울림… 동방의 소리여”

[천지일보=김지현 기자] “그대 들리는가/ 천년의 소리/ 겨레 가슴으로 빚어/ 세상을 깨우는/ 무궁한 역사의 메아리/ 자유와 정의와/ 사랑으로/ 인류평화를 위한/ 영원한 울림/ 동방의 소리여…”

에밀레종에 대해 읊은 심응섭의 ‘한국의 소리’라는 시다.

이 동방의 소리, 영원한 울림이 있는 에밀레종에 대한 전설은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가.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봉덕사에 큰 종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부왕이신 성덕대왕을 기릴 수 있도록 신라에서 가장 큰 종을 만들도록 하시오. 그리고 종을 치면 그 여운이 멀리까지 퍼지도록 만들도록 하시오.”
신하들은 종을 잘 만들기로 이름난 일전이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 일을 부탁했다.

일전은 공들여 종을 만들고 용이 구름을 타고 나는 무늬도 그려 넣었다. 마침내 종이 완성되자 경덕왕은 몸소 종을 보러 나왔고 봉덕사의 스님 한 분이 힘껏 종을 쳤다. 하지만 종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경덕왕이 직접 종을 쳐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정성이 부족하여 부처님께서 노하신 것 같소. 그러니 경들은 다시 시주를 거두어서 더욱 정성을 들여 만들도록 하시오.” 봉덕사의 스님들은 전국을 다니며 시주를 받기에 바빴고 그동안 경덕왕은 세상을 떴지만 종 만드는 일은 계속됐다. 하루는 봉덕사 주지 스님이 꿈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며칠 전 시주를 받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집의 아이를 데려오너라. 그 아이가 들어가야 되느니라.” 잠에서 깬 주지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아이라면… 시주할 게 아무것도 없다던 그 집 아이를 말하는 것이구나. 부처님의 뜻이니 서둘러야겠다.’ 날이 밝자 스님은 그 집으로 찾아가서 꿈 얘기를 했다.

“스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을 끓는 물에 넣도록 둘 수 있겠습니까?” 아기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넋두리를 했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아기를 내놓고 말았다.

주지 스님이 데려온 아기는 펄펄 끓는 쇳물 속에 넣어지고 종은 다시 만들어졌다. 이번에도 왕이 보는 앞에서 주지 스님은 힘껏 종을 쳤다.

이 때 맑은 종소리 가운데 ‘에밀레, 에밀레’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섞여 나왔다. 그 소리는 마치 아기가 자신의 어머니를 애타게 찾는 듯한 소리였다. 그래서 이 종을 ‘에밀레종’ 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이 애절한 종소리에 대해 소위 태평성대라 일컫던 그 시대 전제왕권과 귀족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뒷바라지 하느라 시달린 민중들의 한 맺힌 소리로 해석하기도 한다.

당시 34년이란 긴 세월동안 구리 12만 근(72톤)을 동원해 엄청난 불사를 추진하는데 있어 수많은 백성들이 시주와 노동으로 희생됐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종은 봉덕사, 영묘사, 봉황대를 거쳐 경주박물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종 바깥 표면엔 연화좌(蓮華坐)위에 무릎을 세우고 공양하는 모습을 새긴 4구의 비천상(飛天像)이 있다. 그 주위에 보상화(寶相花)가 구름같이 피어오르고 천상으로 천의(天衣)와 영락이 휘날리고 있다.

이는 박진감이 넘치고 사실적인 조각수법으로 다른 신라 동종에서는 볼 수 없는 솜씨로 8세기 중엽 신라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에밀레종의 이야기를 담은 ‘에밀레종’ 영화가 1961년 개봉됐다. 이 영화는 홍성기 씨가 감독을 맡고 최무룡‧조미령‧김지미‧김진규 씨가 출연했던 영화다.

이후 1968년에 개봉된 영화 ‘에밀레종’은 권영순 감독에 신성일‧남정임‧김지미 씨 등이 출연했다.

▲ 1968년에 개봉된 영화‘에밀레종’.  권영순 감독에 신성일, 남정임, 김지미 씨 등이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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