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출간된 ‘파친코’ 원작에 더욱 충실
30년 걸쳐 책 집필, 수백명 인터뷰
‘위험한 책’ 되길 바라며 써내려가

image
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장편소설 ‘파친코’ 기자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이민진 작가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제공:인플루엔셜) ⓒ천지일보 2022.08.08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8월은 광복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해방의 감사함을 떠올릴 수 있는 달이다. 또한 굶주림과 일제의 수탈을 못 이겨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디아스포라(diaspora·고국을 떠난 사람)’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걸어간 길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냈고, 생생한 이야기는 오늘날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장편소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도 30년에 걸쳐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책에 담아냈다. 재미교포 1.5세대이기도 한 이민진 작가. 그가 새롭게 번역해 재출간한 ‘파친코’로 다시 독자들을 찾았다. 8월 광복의 달을 맞아 방한한 이민진 작가를 통해 ‘파친코’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파친코’ 전 세계 33개국에 번역 수출

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이민진 작가는 ‘파친코’ 재출간 소감에 대해 “한국인이 일본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스토리가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버블경제 절정에 이르렀던 1989년 일본까지, 한국과 일본을 무대로 거의 100년에 걸쳐 펼쳐진다. 2017년 출간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현재까지 전 세계 33개국에 번역 수출됐으며, BBC•아마존 등 75개 이상의 주요 매체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또한 미국 문학상인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다. 국내에는 2017년 소개됐다. 2022년 애플TV에서 8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돼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파친코’는 판권 계약 종료로 지난 4월 절판됐다가 새로운 번역과 디자인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이민진 작가는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민 1.5세대이자 역사 전공자로서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일제 침략이 낳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역사가 함부로 제쳐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책을 출간하기까지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역사적 재앙에 맞선 평범한 개개인의 이야기’가 돼야 한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는 일본계 미국인 남편과 일본에 머물면서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 직접 인터뷰를 했고, 많은 사전 연구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발견한다. 

이 작가는 “사실 인종·계급 차별과 여러 가지 혐오 등이 계속 생기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 중에 일부라고도 볼 수 있는 것 같다”며 “역사적으로 봤을때 인간은 항상 다른 사람을 억압하려고 했다. 이 부분은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그는 소설 제목인 ‘파친코’가 일본어지만 출판 당시 영어로 ‘파친코(Pachinko)’라고 쓰겠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그만큼 중요한 단어이고,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야만 하는 일본어”라고 언급했다. 파친코는 도박처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뜻함과 동시에, 혐오와 편견으로 가득한 타향에서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파친코 사업을 선택해야 했던 재일조선인들의 비극적 삶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작가로 일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글쓰기는 저항과 혁명의 행동이기 때문”이라며 “‘파친코’도 사실 굉장히 위험한 책인데, 위험한 책이 되길 바라면서 그렇게 써내려 갔다”고 전했다.

image
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장편소설 ‘파친코’ 기자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이민진 작가가 환하게 웃고 있다. (제공:인플루엔셜) ⓒ천지일보 2022.08.08

◆변호사 꿈꾸다 작가의 길 걸어  

그가 처음부터 작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그는 로스쿨에 들어갔고 변호사를 꿈꿨다. 그러함에도 그는 항상 글과 함께했다. 이 시기에 매우 심각한 간 질환을 앓게 된다. 담당 의사는 “20대 또는 30대에 간암이 걸릴 수 있다”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그에게 통보했다.

이 작가는 “누군가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처럼 너무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오고 살았는데 내가 간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뭔가 좀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에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의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 작가로서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계 미국인 여성작가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시너지 효과 때문이다. 한류가 굉장히 붐(boom)을 일으키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도 문화 수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덕분에 한국계 미국인 여성들이 소설이나 픽션 등을 쓰면 사람들이 관심을 보내고 있고 작가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파친코’는 번역과 구성이 원작에 더욱 충실했다. 새롭게 번역된 ‘파친코’는 첫 문장인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에서부터 원문의 의미를 더욱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작품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도 살리고자 노력했다. 특히 작가가 처음 의도한 구조와 흐름을 살리기 위해 총 세 파트(1부 ‘고향’, 2부 ‘모국’, 3부 ‘파친코’)로 된 원서의 구성을 그대로 담아냈다. 

현재 그는 세 번째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집필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들을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으로 소개한다. 그는 이처럼 한국인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며 “한국인은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깊이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치가 있는 이들”이라며 한국의 이야기를 젊은 세대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image
장편소설 ‘파친코’ 이민진 작가 (제공:인플루엔셜) ⓒ천지일보 2022.08.08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키워드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