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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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스포츠에서 19살 여자 프로골퍼 윤이나만큼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 이는 없을 것이다. 남자에 버금가는 300야드를 넘나드는 폭발적인 장타를 앞세워 한국여자프로골퍼(KLPGA) 대회를 석권하며 인기스타로 떠올랐지만 뒤늦게 밝혀진 ‘오구(誤球) 플레이’로 선수 중단 위기를 맞게 됐기 때문이다.

오구 플레이는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공을 갖고 치는 행위를 뜻한다. 오구 플레이를 하면 그 즉시 2벌타를 받고 다시 플레이를 해야 한다. 세계골프의 ‘바이블’격인 영국왕립골프협회에서는 규정 위반 후 이를 숨긴 사실이 적발되면 ‘영구 출전 정지’를 내린다. ‘신사의 운동’인 골프는 ‘스스로 규정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윤이나는 오구 플레이가 발생한 지 1달여가 지나고 자신이 KLPGA 대회 에버콜라겐 퀸즈 마스터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고 난 뒤 오구 플레이에 대해 뒤늦게 자진 신고를 했다. 지난 25일 소속사를 통해 그는 “저의 미성숙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깊이 들여다보겠다”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나은 선수 그리고 사람이 되겠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아울러 “선수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동시에 성적에만 연연했던 지난날들을 처음으로 되짚어 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잠정적으로 선수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사과문을 냈을 때만 해도 일부 동정 여론이 있었다. 모처럼 탄생한 대형 신인이 경험 부족으로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진 신고의 시기와 방법 등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면서 ‘죄질이 매우 안 좋다’며 여론이 악화됐다.

사건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16일 충북 음성 레인보우힐스CC에서 열린 제 36회 DB그룹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 1라운드에서 윤이나는 당시 마다솜(23), 권서연(21)과 함께 한 조를 이뤄 오전 6시 35분 10번 홀에서 티 오프했다. 파5인 첫 홀에서 무려 6오버파인 11타를 쳤다. 장타 샷이 잇달아 페널티 지역으로 날아가 흔들리며 주말골퍼들도 싫어하는 ‘양파’ 이상을 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홀인 파3 11번 홀에선 행운의 홀인원을 해 2타를 줄였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던 것이다. 13번 홀에서 보기를 범해 1타를 잃은 그는 문제의 15번 홀 티샷이 오른쪽 러프에 빠졌다. 그는 러프에서 친 공이 자신의 공이 아니었다는 걸 15번 홀 그린에 올라가서 알았다고 한다. 공은 동반자인 마다솜, 권서연 공도 아닌 이른바 로스트 볼인 것으로 확인됐다. 골프 규정에는 선수는 자신의 공이 아닌 남의 공으로 플레이할 경우 실격 처리를 받게 된다. 원래 규칙대로라면 3분 안에 자신의 공을 찾지 못할 경우 1 페널티를 받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 다시 플레이 해야 한다. 윤이나는 로스트 볼이 발견됐을 당시 자신의 볼이 아님을 확인했어야 했고, 1벌타를 받고 티샷을 다시 했어야 했다. 그것이 규칙에 맞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를 위반해 플레이를 진행했던 것이다. 윤이나는 다음날인 2라운드까지 경기를 진행했고, 당시 컷 탈락하며 대회를 마쳤다.

윤이나는 오구 플레이가 발생한 지 한 달 넘겨 숨겨왔다가 당시 자신의 백을 멨던 캐디와 결별한 후에 ‘부정행위’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자 7월 15일 오전 대한골프협회에 뒤늦게 메일을 통해 자진신고 했다. 이날은 그가 데뷔 첫 우승을 한 대회 2라운드 때였다. 1라운드에서 7언더파를 몰아치며 단독 선두에 오른 그는 3일 내내 선두를 지키다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팬들은 300야드 안팎의 폭발적인 장타로 화제를 모은 그의 샷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새로운 스타탄생에 환호했다.

그는 첫 우승 후 다음 대회인 호반클래식도 3라운드까지 완주해 7언더파 공동 15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골프협회는 호반클래식 대회 개막 이틀 전인 7월 20일 윤이나의 한국여자오픈 성적을 ‘컷오프’에서 ‘실격’으로 수정했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윤이나와 소속사는 대회 기간 내내 이 사실을 숨기고 발표하지 않다가 골프계에 소문이 확산하자 어쩔 수 없이 뒤늦게 공식 사과문을 내고 투어 중단을 선언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과문의 진정성과 설득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한골프협회는 금명간 스포츠 공정위원회를 열어 윤이나의 징계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황적으로 그는 중징계를 피하기 어렵다. ‘잘 치는 골프’만 추구하다가 어린 선수가 한 순간의 욕심 때문에 추락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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