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
내년 말까지 대체 입법해야
일부재판관 “주민번호 만능키”
무분별 정보수집 제한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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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검수완박' 법안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공개변론기일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수사기관이 통신조회 후 사후 통보를 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검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경찰 등의 광범위한 통신조회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21일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한 정보수집을 위한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관해 사후통지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된다며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의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즉시 법률의 효력이 중지되는 위헌 결정과 달리 헌법불합치 결정인 만큼 내년 12월 31일까지 현행 법률을 유지하면서 대체 입법이 되도록 했다. 

현재 법률에 따라 수사기관은 이동통신사에게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아이디 등을 요청해 제공받을 수 있다.

헌재는 “통신자료 제공요청이 있는 경우 통신자료의 정보주체인 이용자에게는 통신자료 제공요청이 있었다는 점이 사전에 고지되지 않고,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 등에게 통신자료를 제공한 경우에도 이러한 사실이 이용자에게 별도로 통지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 당사자에 대한 통지는 당사자가 기본권 제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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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시행을 두 달 가량 앞둔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국민의힘이 국회의장과 법제사법위원장을 상대로 낸 검수완박법 권한쟁의 심판 공개 변론이 열리고 있다.

헌재는 “효율적인 수사와 정보수집의 신속성, 밀행성 등의 필요성을 고려해 사전에 이용자에게 그 내역을 통지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면 수사기관 등이 통신자료를 취득한 이후에 사 등 정보수집의 목적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통신자료의 취득사실을 이용자에게 통지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봤다.

그럼에도 사후통지 절차를 두지 않은 전기통신사업법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게 헌재 판단이다.

다만 “통신자료 취득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아니라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통지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므로, 해당 조항에 대해 단순위헌 결정을 하게 되면 법적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며 내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하는 조건으로 잠정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와 관련 헌재는 통신자료 취득행위에 대한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수사기관 등에 의한 통신자료 제공요청은 임의수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기통신사업자가 이에 응하지 않는다고 어떠한 법적 불이익을 받는다고 볼 수 없다”며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헌재는 이석태·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별개의견을 통해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는 정보주체인 청구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진 것”이라며 “청구인들이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 제공을 저지하기 위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 등이 청구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들의 통신자료를 취득한 순간 곧바로 청구인들의 법적 지위가 불리하게 변화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통신자료 취득행위는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인 통신자료에 대해 대물적으로 행하는 수사행위로서 권력적 사실행위에 해당하므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행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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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공식 출범일인 21일 경기 정부과천청사에 공수처 현판이 걸려 있다. 2021. 1. 21

별개로 이종석 재판관은 통신조회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봤다.

이 재판관은 “주민등록번호는 만능키라고 불리울 정도로 다른 민감한 정보로의 연결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수사나 정보 수집의 초기단계에서 용의자나 피해자를 특정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성명,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정도의 통신자료만을 제공받아도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수사기관이 취득한 통신자료의 보관기관이나 폐기절차 등 사후관리에 관한 규정을 전혀 마련하지 않은 점 등도 우려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대해 “사전통지가 어렵다면 적어도 사후통지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정보주체인 이용자에게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기회를 제공했어야 한다는 취지”라며 “이용자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보장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수사기관이 무분별하게 통신조회를 하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기자와 민간인 등에 대한 광범위한 통신조회로 논란을 일으킨 공수처는 헌재 결정 후 곧바로 입장을 내고 “향후 국회가 해당 법 조항 개정을 추진할 경우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해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자료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수사상 목적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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