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대 국문과에 재학 중인 재일교포 시각장애인 홍선홍 (24, 남) 씨가 점자책을 보고 있다. (장윤정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대구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재일교포 시각장애인 홍선홍 씨 인터뷰

[천지일보=장윤정 기자]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국학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요즘 한국어 매력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대구대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한 시각장애인 재일교포 3세 홍선홍(24, 남) 씨는 “국어학이 어렵긴 하지만 알면 알수록 무척 재밌고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학문”이라면서 한국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재일교포 시각장애인이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 다닌다는 것도 놀랄만한 일인데, 전공은 또 국어국문학과란다.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

홍 씨는 “처음엔 ‘한글 한 번 공부해볼까?’라며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한국어 끝까지 파고들어 보자’라는 다짐까지 하게 됐다”면서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국문과를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는 3년 전 일본 축구 동호회에서 다른 팀과 축구시합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때 자신의 국적을 이야기하는 데 자신이 일본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지, 한국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호했다고 한다.

홍 씨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체성도 불분명했고 한국 사람이지만 ‘안녕하세요’ 인사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는 자신이 한심했어요. 그래서 한글을 공부해 보기로 했던 거죠”라며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동기에 대해 말했다.

재일교포라는 지칭이 무색할 만큼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한국말을 잘하기 위해 그는 일본에서 NHK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하는 한국어 강좌와 한국 드라마를 보며 단어·문법 등을 독학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시각장애인에 대해 연구하는 한국 유학생을 만나게 됐어요. 이 유학생에게 한글 점자를 배우게 됐죠. 그 때 점자책을 하나씩 읽어 나갈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짧은 시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구입해 읽었다. 그는 조금 어렵긴 했지만 손으로 점자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렇게 공부하다 홍 씨는 일본 국립 츠쿠바기술대학 정보시스템학과를 졸업한 후에 ‘정체성을 찾고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해봐야 겠다’고 다짐, 올해 3월 대구대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하게 됐다.

대구대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일본에 있는 주변 친구들이 ‘이 학교는 유학생도 많고 교육지원 시스템도 잘 돼있다’라며 권유했기 때문이다.

홍 씨는 “이곳에 오니 정말 유학생이 많아 좋아요. 전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온 학생들하고 친한 편이에요. 한국어도 배우고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친구도 될 수 있어 ‘일석이득’이죠”라며 기뻐했다.

그는 요즘 국어학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과 체계적인 음운 체계를 성립하고 있는 음운론 등 일본에선 접할 수 없었던 부분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홍 씨는 “이 위대한 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것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국어학을 공부하면서 한국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생겨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처음 한국에 왔을 땐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아 매우 불편했다. 그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있긴 하나 장애인을 대할 때 태도나 인식 등은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 같다”며 “이런 부분도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홍 씨는 이어 “최근 영화 ‘도가니’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 것도 같다”며 “영화·드라마·책 등의 매개체를 통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어학 교수가 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영향력 있는 교수가 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싶다고 밝혔다.

홍 씨는 “지금은 소망에 도달하는 게 멀어 보이고 더딜 수도 있겠죠. 그러나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분명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옳은 길이라고 판단되면 끝까지 도전해 봐야 겠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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