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 장관이 11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내 분향소를 찾았다. 일본 최장수 총리를 지낸 거물급 정치인의 사망을 애도하고 유족과 일본 국민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은 외교를 책임진 박 장관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날 박 장관은 분향소 조문을 마친 뒤 “과거 한일 의원 친선 활동을 통해 만나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나름 개인적 인연을 밝힌 셈이다. 조문록에는 유족과 일본 국민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썼다. 딱 여기까지의 행보가 좋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8일 아베 전 일본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 여사에게 조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외교적 수순이라 하겠다. 조만간 공식 추모식에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으로 구성된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할 예정이라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직접 주한 일본대사관이 마련하는 아베 전 총리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할 계획이라고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10일 브리핑에서 밝혔다. 오랫동안 한일관계가 경색된 국면에서 ‘조문 외교’를 통해 국면을 바꿔 보려는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아베 전 총리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극우 정치인이다. 일본의 극우는 한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원흉이며 더 나아가 미래 한일관계의 발목을 잡는 핵심이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의 극우 군국주의를 부추기며 한국과 아시아인에게 고통과 분노를 촉발시킨 핵심 인물이다. 심지어 최근 사망할 당시에도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촉구하며 ‘전쟁 가능 국가’로서의 일본을 외친 주역이다. 이 밖에도 역사 왜곡과 혐한 차별주의, 수출규제 등 한국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던 매우 불편한 인물이다.

아베 전 총리를 단순히 감정적, 편향적 시각으로만 보는 게 아니다. 역사적으로 냉철하게 봐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현실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외교적으로도 그동안 한국 정부에 어떻게 대했는지도 제대로 알고 대응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매우 불편한 인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유족과 일본 국민에 대한 도의적, 인간적 조의는 마땅하다. 다만 그 차원을 넘어서지 말라는 것이다. 자칫 앞뒤 분간도 없이 시류에 편승하는 경거망동은 최악이다. 대한민국 국격에 맞게,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조문 외교에도 좀 더 엄중하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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