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만의 경제난에 생활고 심화
시위 진압에 최루탄·물대포 동원도
대규모 시위 대비 군경 수만명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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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 경찰청 밖에서 시위대가 경찰청 진입을 시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안채린 기자] 국가 부도 상태인 스리랑카가 최악의 경제난을 겪으면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 정부가 통행금지령을 일시적으로 발동했다. 

현지 경찰은 지난 8일 오후 9시 수도 콜롬보 등 일부 지역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가 다음날 오전 8시에 해제했다고 9일(현지시간) 이코노미넥스트 등 스리랑카 언론과 외신이 보도했다. 

일시 통금령은 이날로 예정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사전 대응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보인다. 통행금지령이 내려질 경우 통행금지 지역에 거주자들은 이 시간 동안 집에 머물러야 한다. 

이날 현지 경찰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행금지를 어기는 것은 치안을 어지럽히는 것으로 간주해 엄정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스리랑카 정부가 통행금지 조치를 한 것과 관련해 스리랑카 변호사 협회 등은 즉시 철회할 것을 요청하면서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야권, 학생단체, 노동조합 등은 이날 콜롬보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열겠다고 경고했으며 전날부터 학생 등 수천명이 밤늦게까지 콜롬보에서 시위를 벌였다.

스리랑카의 상업 수도인 콜롬보 등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와 경찰 간에 충돌이 빚어졌고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고 물대포를 동원해 대응했다. 

이와 함께 당국은 대통령 집무실 등 주요 정부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 당국 고위 관계자는 AFP통신에 “약 2만명의 군인과 경찰이 콜롬보에 배치됐다”며 “9일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줄리 지윤 정 주스리랑카 미국 대사는 군과 경찰에 평화적인 시위를 허용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트윗에서 “폭력은 답이 아니다”며 “혼돈과 무력은 현재 스리랑카에 필요한 경제를 고치거나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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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 경찰청 밖에서 시위 중이던 한 남성이 경찰의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스리랑카는 경제 위기로 인해 물가가 급등하고 생필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빈곤층과 취약계층이 큰 타격을 입었다. 최악의 경제 위기에 분노한 시민이 올해 초부터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특히 지난 5월 초에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더욱 격화됐다. 시위대는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은 라자팍사의 사임을 요구한다”며 “20년 동안 스리랑카를 통치한 라자팍사 가족의 부패와 잘못된 통치로 위기를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집권 라자팍사 가문과 현역 의원의 집 수십여 채를 불태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9명 이상이 숨지고 250여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현재 라자팍사 가족의 형제 중 한 명이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다른 두 형제와 조카 한 명이 앞서 각료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야권 인사인 라닐 위크레메싱게 전 총리를 신임 총리로 임명했다. 다만 대통령은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 한 헌법상 대통령을 축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시위 기세는 한풀 꺾인 상태였지만 생필품 부족난과 인플레이션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다시 시위가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위크레메싱게 신임 총리가 경제난 사태를 끝내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요인이다. 

스리랑카는 지나친 감세 등 재정 정책에 실패한 데다가 대외 부채가 급증한 가운데 외환 보유고가 고갈됐고, 식품, 연료 및 의약품을 수입할 수 없게 되면서 올해 만기인 외채 상환을 중단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4월 12일 IMF(국제통화기구) 구제금융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대외 부채 상환을 유예한다며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했으며, 지난 5월 18일부터 공식적인 디폴트 상태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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