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계속 낮추고 있다. 세계적인 금리 상승기에 국내 시중은행들의 이번 조치는 아주 이례적이다. 그러면서도 예금과 적금 금리는 올리고 있다. 국민에게는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긴 하지만 그 내막을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시중은행들이 먼저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고 은행 내부의 혁신을 도모하려는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 부임한 이복현 금감원장이 금융권을 향해 은행들이 지나치게 ‘이익 추구’를 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자, 이에 각 은행이 부랴부랴 ‘생색내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금리상승 기조가 뚜렷해지자 시중은행들의 예대금리차는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앉아서 엄청난 이자만 챙긴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시중은행들의 이런 행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위기 앞에서도 시중은행들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고율의 이자 장사로 돈벌이에 나서려 했다. 게다가 ‘수수료 장사’까지 더해지면 이 엄중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막대한 돈벌이를 하는 셈이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서민의 극심한 고통에는 이렇다 할 대책이나 고민도 보이질 않았다. 정권이 교체되고 검찰 출신의 이복현 금감원장의 경고가 나오자마자 그때서야 ‘여론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이르면 이번 주(4~8일)부터 신규 취급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각 최대 0.35%포인트, 0.30%포인트 내리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NH농협도 지난 1일부터 우대금리 확대 등을 통해 주택관련대출 금리를 0.1~0.2%포인트 낮춘 상태다. 이 밖에도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도 우대금리를 확대하거나 기존 금리를 소폭 인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금감원장 경고 한마디에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금리인하에 나서는 모습은 씁쓸하다 못해 금융권에 대한 배신감까지 느끼게 한다. 이제 시중은행들도 이자나 수수료 장사로 막대한 돈벌이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민들의 고혈로 그들의 이익을 챙겼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쟁력이 없다면, 국민적 어려움을 헤쳐나갈 비전이 없다면 그런 은행이 설 땅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금감원장 말 한마디에 입장을 바꾸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금융의 ‘공적 기능’을 완전히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내부의 비대해진 조직, 고임금 구조, 방만한 조직 운영 등에 대한 총체적 혁신이 필요하다. 더는 시간을 늦출 수 없다. 한국 금융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시중은행들의 대대적인 혁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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