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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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모래밭에서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그리스 조각품 같은 근육질의 몸통을 드러내며 2대2 비치발리볼이 펼쳐진다. 터질듯한 20대 청춘의 외모와 몸을 자랑하는 탐 크루즈는 상대가 비치발리볼을 손으로 돌리며 날리자 땀으로 절여진 몸으로 막아낸다. 득점을 올리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몸을 부딪치며 강렬한 스킨십을 한다.

#2. 붉게 물든 석양을 뒤로 하고 파도가 철썩되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구릿빛의 ‘핫 가이’들이 서로 몸을 뒤엉켜 미식축구 경기를 벌인다. 미식축구볼을 돌리며 경기가 시작된다. 아직도 젊은 20대 젊은 후배 파이럿에 못지않은 탄탄한 몸을 드러낸 50대 후반의 탐 크루즈는 몸을 날리며 볼을 잡기위해 뛰어다닌다. 얼굴의 주름살만 빼면 하나도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22일 개봉된 미국 영화 ‘탑 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을 봤다. 이번 영화는 1986년 제작된 ‘탑 건’에 이어 36년만에 나온 후속편이다. 긴 시간을 건너뛴 두 영화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즐긴 스포츠 장면이었다. ‘탑 건 1’에서는 비치발리볼, ‘탑 건 2’에서는 미식축구 장면이 그것이다.

두 영화는 여러 장면에서 비슷한 장면이 많았다. 항공모함에서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모습, 박력넘치고 강렬한 전투기의 공중전, 비행장 활주로 옆을 질주하는 가와사키 오토바이 장면, 전투기 조종사들의 사랑과 우정 등은 향수와 경외감을 함께 불러 일으켰다. 스포츠 장면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종목 자체는 분명한 대조를 보였다. 1편에선 비치발리볼, 2편에서는 미식축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종목 다 해군 전투기 조종사가 바닷가에서 즐길 수 있는 종목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두 영화에서 각각 비치발리볼과 미식축구로 종목을 달리한 것은 시대적 감성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탑건 1’이 제작된 1986년은 미국이 1970년대 월남전 패배 이후 국가주의가 퇴조하며 개인주의가 팽배하던 무렵이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선거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를 앞세워 당선된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섹시한 남성미를 과시하는 감성이 주류를 이뤘다. 이는 스포츠에서도 반영됐다. 자유와 낭만, 대자연이 공존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비치발리볼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이다. 36년 후 선보인 ‘탑 건 2’에선 시대가 많이 변했다. 컴퓨터를 거쳐 인공지능시대를 맞으며 드론이 파일럿을 대체하는 상황이다. 영화에선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스포츠로 미식축구를 선택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매버릭(탐 크루즈)이 사령관으로부터 앞으로 무인비행기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오늘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던 것이 미식축구의 선택한 암시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미식축구는 미국 취향에 맞게 변형된 단체 구기종목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프로야구를 밀어내고 미국 최고 인기스포츠로 자리잡았다. 격렬한 몸싸움이 많아 어느 종목보다 팀웍이 요구되는 종목이다. ‘탑 건 2’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요한 건 전투기가 아니라 파일럿이야”도 미식축구를 선택한 부분을 함축해준다.

스포츠의 인기는 시대의 생각과 사고를 잘 반영해준다. 대중들은 시대의 정서에 따라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을 선택한다. 역사 속에서 유행한 스포츠를 보면 시대 감성을 읽을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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