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카드 수수료율 인하… 카드사 수익악화 속 생존 몸부림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여신전문금융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취임 이후 첫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달 내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가운데, 이번 간담회에서 규제를 완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급등에 대해선 시장금리 상승 영향으로 개입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도 카드 수수료율의 경우는 3년마다 재산정 작업을 진행해 ‘관치금융’ 지적과 함께 ‘이중잣대’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이 신규 수익원을 확보하지 않는 한 내년에는 대외적으로 어려운 한 해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수료율이 떨어져 수익이 악화되는 동시에 카드채권 조달금리 상승과 카드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편입 등 삼중고가 예상되면서다.
◆수수료는 정하면서 금리는 나 몰라라
6일 여전업계에 따르면 오는 7일 오전 정 원장은 신한·KB국민·삼성·현대 등 대형카드사 4곳과 현대·하나·롯데 캐피탈사 3곳,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 등 관계자 간담회를 진행한다. 이번 간담회를 통해 여전업계 현황 및 애로사항과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드사들은 2007년 이후 10여 차례에 걸쳐 4.5%였던 카드 수수료율을 1.97~2.04% 수준까지 낮췄다. 국내 가맹점 가운데 연매출 3억원 이하인 영세 가맹점은 0.8%의 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고 연매출 30억원 이하의 가맹점은 중소가맹점으로 구분해 1.6%의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한다. 이 가맹점들은 전체의 96%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2012년 개정한 여신전문금융업법을 들어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산정 개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전법에 따르면 3년마다 ‘원가분석 및 적격비용 산출 작업’을 거쳐 이듬해 변경된 수수료율이 반영된다.
그러나 모든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정부가 정하고 직접 통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에 금융당국이 금리, 수수료 등 시장 가격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정부가 시장가격인 대출금리 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카드수수료 문제는 정부가 개입하도록 명시돼 대출금리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대출금리 산정과 카드 수수료율에 대해 이중잣대를 적용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수익성 악화에 금리 올라… 서민들만 고통
잇단 수수료율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되며 카드사들은 카드론 금리를 올리고 우대금리를 조정하는 등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다. 더욱이 기준금리가 인상됨에 따라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는 점도 카드사 대출금리 급등의 배경이 됐다.
지난 10월 말 기준 신한·국민·삼성·현대·롯데·우리·하나 등 7개 카드사의 카드론(장기 카드대출) 금리 중 작년 말보다 오른 곳은 4곳으로 절반을 넘었다. 여신금융협회 공시에 따르면 7개 카드사의 카드론 금리는 지난달 말 6.63~19.63%로 평균 금리는 12.94%였다.
특히 우리카드는 연 11.61%에서 14.43%로 10개월 만에 카드론 금리가 2.82%p 올랐다. 롯데카드는 0.84%p 상승한 연 14.73%로 7개 카드사 중 가장 높은 금리 수준을 보였다. 국민카드는 연 13.81%, 현대카드는 연 13.31%로 각각 0.59%p, 0.28%p 올랐다.
신한카드와 삼성카드의 경우 지난해 12월 말과 비교하면 소폭 떨어졌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직후인 지난 8월 말과 비교하면 각각 0.59%p, 0.13%[ 오른 연 13.13%, 연 13.73%로 집계됐다.
카드론이 서민의 급전 창구로 사용된 것을 감안하면 금리 급상승으로 서민과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내년 1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카드론 잔액이 포함되고 카드사의 DSR 기준도 60%에서 50%로 낮아지면 카드론 시장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카드사 허리띠 졸라매서 수수료 줄이나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카드사의 실적 개선을 이유로 수수료율을 인하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8개 카드사(신한·KB국민·삼성·현대·롯데·우리·하나·BC카드)의 순이익은 2조 264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 6463억원) 대비 23.1%(3801억원)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는 1조 4944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 1181억원) 대비 33.7%(3763억원) 늘었다.
그러나 카드업계는 이 같은 실적 개선은 카드사의 허리띠를 졸라 가능한 결과라고 토로하고 있다. 카드 노조는 “수수료율 인하 조치로 인력 감축, 투자 중단, 내부 비용통제를 통해 허리띠를 조르면 고스란히 원가에 반영돼 수수료율 인하의 근거로 산출된다”고 지적했다.
또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매년 줄고 있고 본업인 카드수수료 부문 수익이 아닌 카드론(장기카드대출), 자동차할부금융 등 부업으로 실적이 늘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올해 수수료율이 0.1% 인하될 경우 내년 카드사 합산 영업이익은 52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실적이 증가한 이유가 코로나19 영향으로 대출 수요가 늘었고, 디지털화에 나서 마케팅 비용을 줄인 효과라는 분석이다.
◆수수료율 인하에 내년 사업계획 수립 차일피일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카드사는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을 미루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이맘때쯤 계획이 다 수립돼야 하지만 금융당국이 조만간 내놓을 카드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를 미루는 것이다.
카드사별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몇 가지 시장전망을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은 연말이나 내년 초에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내년에 카드업계는 공격적인 영업보다 수익성 개선 위주의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데이터 경쟁력 강화와 신사업 발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카드는 최근 사업 목적에 ‘데이터 전문기관업’을 추가했다. 금융위원회의 데이터전문기관 지정을 준비하면서 마이데이터와 빅데이터 영역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또 ‘신한플레이’를 중심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KB국민카드는 우량고객 비중 증대를 통해 고객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모바일 및 플랫폼 채널 경쟁력을 강화해 나간다. 하나카드는 ‘원큐페이’를 생활 및 종합금융플랫폼으로 전환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모바일 간편결제 활성화와 네트워크 확충으로 지급결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데이터 사업에 집중해 중장기 성장동력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카드는 독자가맹점 결제망 구축을 통한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통해 맞춤형 혜택을 담은 가맹점 마케팅을 강화할 방침이다. 디지털 역량과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조직 혁신도 진행한다.
삼성카드는 새로운 상품 브랜드인 ‘삼성 iD 카드’를 중심으로 고객 중심의 상품전략 운영·판매를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한다. 현대카드는 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 사업을 내년에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경쟁력 있는 파트너사를 늘려나가는 것과 함께 ‘데이터 동맹’을 통한 마케팅 협업도 지속할 방침이다.
롯데카드는 내년 신용카드사 본연의 경쟁력을 지속 강화하는 동시에 ‘캡티브 채널(전속시장)’의 새로운 마케팅 모델을 정립해 고객 중심의 디지털화를 추구할 계획이다. 비씨카드는 매입업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 신용카드를 계속적으로 발급할 예정이다. 또한 마이데이터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데이터 관련 사업 확장에도 주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