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은행에 인뱅·상호금융까지 대출 문턱 높인다… 전세 실수요자 ‘발 동동’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연말까지 약 3개월 가량이 남았지만, 주요 시중은행은 물론 인터넷전문은행과 상호금융도 줄줄이 대출 창구를 닫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금융당국이 ‘5∼6%’ ‘6%대’ 등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에 대해 다양하게 언급하며 은행들이 어느 기준에 맞춰 대출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지 혼란을 겪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3조 4416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말(670조 1539억원)과 비교해 4.97% 늘어난 규모다.
은행별로 농협은행이 7.14% 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뒤를 이어 하나은행 5.23%, 국민은행 5.06%, 우리은행 4.24%, 신한은행 3.16%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정한 증가율 목표치보다 높아진 농협은행은 지난 8월 가계 부동산대출 신규 취급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11월 말까지 해당 조치를 취할 예정이지만, 대출 증가세를 고려한다면 연내 재개는 불투명하다.
농협은행의 대출 판매 중단 이후 불어닥친 풍선효과로 다른 시중은행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점차 대출 창구를 좁히며 금융당국이 제시한 목표치 내로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가장 많은 가계대출 규모를 가진 국민은행의 경우, 1주일 만에 0.16%p가 오르면서 5%를 돌파했다. 이에 따라 이달부터 연말까지 영업점별 가계대출 신규 취급한도 관리를 시작했다.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즈음에 5%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달부터 월별, 영업점별 가계대출 한도 관리에 들어갔다. 영업점별로 대출 한도가 타면 신규 대출이 불가하다.
하나은행은 다음 달부터 연말까지 대출모집법인 6곳을 통한 대출 영업을 중단한다. 또 일부 대출상품의 대출 갈아타기 신규 신청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대출 여력이 남아있는 신한은행의 경우, 수요가 몰릴 것을 우려해 대출 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을 조만간 중단할 예정이다.
금융권에선 내년 초까지 이 같은 대출 제한·중단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추가 대출 제한 조치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한쪽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 다른 은행으로 수요가 몰리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풍선효과를 막기 위한 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시중은행을 비롯해 인터넷은행까지도 번져가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올해 연말까지 마이너스 통장과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전월세 보증금 대출의 신규 취급을 전면 중단한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 차원과 동시에 중저신용자에 대한 중금리 대출 비중도 관리해야 하기에 나온 조치로 해석된다.
케이뱅크도 지난 2일부터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축소했다. 신용대출은 기존 2억 50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대출 플러스는 기존 1억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한도가 축소된다. 일각에선 케이뱅크가 조만간 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가계대출 총량 규제는 신생 인터넷은행인 토스뱅크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8일 기준 토스뱅크 대출액은 3000억원에 육박하면서 연 대출 총량인 5000억원의 60%를 소진한 상태다. 오픈 첫 주 속도가 유지될 경우, 며칠 내 한도에 도달하면서 신용대출을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
은행은 아니지만 농협·수협·신협·산림조합 등 상호금융도 잇달아 대출 축소에 나섰다. 산림조합은 준조합원과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한다. 오는 12~13일부터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해 토지나 임야를 담보로 하는 비주택담보대출 상품 운영까지 잠정 중단할 방침이다. 전국 130여개 산림조합 가계대출 증가율은 5%대를 넘겨 1년 증가율 목표치인 4%대를 넘어선 데 대한 조치다.
수협도 지난 1일부터 신규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수협 조합원과 비·준조합원 모두 신규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중도금집단대출을 받을 수 없다. 수협 조합원 중 어업경영상 필요한 대출만 제한적으로 받을 수 있다.
신협의 경우 지난 8월말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이 1%대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지만 개별 조합 중 증가율이 21%가 넘는 곳도 있어 이달 1일부터 가계대출 증가율이 4.1%를 넘는 조합에 고소득자 대출을 연봉내로 제한할 방침이다. 전체 조합 대상으론 집단 대출한도를 사업장당 500억원까지 축소한다.
농협중앙회는 난 8월 주택담보대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한도를 60%에서 40~50%로 낮추고 집단대출 신규 승인을 전면 중단했다.
이러한 상황에 금융권에서는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가계부채가 경제·금융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가계부채 증가율을 6%대로 관리하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로 인해 시중은행들이 전세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세 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가 이달 중순께 발표할 가계부채 보완대책에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고 위원장은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세대출을 조이고 집단대출도 막아야 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의 질의에 “6.9%를 달성하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며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현재 늘어나는 가계부채 대부분이 실수요자 대출로, 가능한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종합적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선 전세대출 실수요자를 고려해 전세대출 규제를 재고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경기도 외곽에 거주한다 밝힌 청원인은 “은행에서 전세대출이 가능하다는 가심사를 받고 입주 한 달 전 안심하고 계약했는데 지금 전세대출을 조이면 계약금을 날려야 하느냐”며 호소했다.
그는 “지금 사는 전셋집 집주인이 실거주 이유를 대며 재계약을 거부해서 아이 학교 등을 고려해 같은 아파트로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전셋값이 2억원 올라 전세대출을 알아봤다”고 전했다.
다른 청원인도 “성실하게 한푼 두푼 모아 전세 들어가고, 주택 구입하려는 게 잘못이냐”며 “대출 규제도 좋지만, 제발 실수요자를 구분해 규제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