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놓고 ‘당정 충돌’ 재점화?… 전국민 30만원vs취약층 선별

2021-06-04     김누리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3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제공: 기획재정부) ⓒ천지일보 2021.6.3

與 올여름 재난지원금 지급 공식화

기재부, 건전성 감안해 보편지급 불가

정부, 선별지원에 무게 두는 분위기

30조 넘는 최대 추경 예상돼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여당이 올여름 재난지원금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다시 한 번 당정 갈등이 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보편지원을 거론했지만 정부는 피해계층에 지원을 집중하는 선별지원 원칙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예상보다 많이 걷힌 세금을 활용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방향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지원금 규모와 지급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 것이다.

4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코로나19 피해계층과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집중하는 선별 지원에 무게를 두고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2차 추경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이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추경 편성 논의는 지난달 2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큰 폭으로 증가한 세수를 활용한 추가 재정 투입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발언과 함께 시작됐다.

이후 기획재정부는 관련 논의에 들어가 지난 2·3·4차 재난지원금처럼 피해를 입은 곳을 가려내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식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를 하고 있다. (제공: 민주당) ⓒ천지일보 2021.6.2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전국민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민심을 잘 헤아리겠다”고 말한 바 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도 3일 “올여름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손실보상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가구별로 지급됐던 작년 1차 전국민 지원금과 달리 1인당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1인당 30만원씩 지급할 경우 총 지원규모는 15조원에 달한다.

여당에서 재차 전국민 지원금을 추진하는 것은 늘어난 국세 수입과도 연관이 있다. 정부는 올 1분기 국세 수입으로 88조 5000억원을 거둬들여 작년보다 19조원의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긴 만큼 확장 재정을 통해 경기를 끌어올린다는 계산이다.

지원 방식에 따라 이번 추경 규모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모두 4차례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1차의 경우 14조 3000억원이 쓰였다. 이후 선별 지급을 결정한 2차, 3차에서는 각각 7조 8000억원, 9조 3000억원의 재난지원금을 편성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장기화에 따른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피해 계층 집중 지원 대책을 담은 4차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추가경정예산을 다음 주 발표할 예정이다. 2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2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2.27

올해 초 시행된 4차에서는 15조원의 재원이 투입됐다. 여기에는 소상공인·고용취약계층 긴급 피해지원금 8조 1000억원, 긴급 고용대책 2조 8000억원, 백신 등 방역대책 4조 1000억원 등이 포함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번 추경 규모가 지난해 3차 추경(35조 3000억원)을 넘어 역대 가장 많은 액수를 기록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재정 건전성 등을 고려할 때 선별 지급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부터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줄곧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또 현재까지도 보편적 지원보다는 피해 계층에 지원을 집중하는 방안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차에 걸친 추경으로 어려워진 국가재정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4차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한 데 이어 지난 3월 추경까지 이어지면서 재정 건전성은 빠르게 악화됐다. 지난 3월 추경을 반영한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965조 9000억원, 국가채무비율은 48.2%로 예상된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당시 600조원대였던 채무가 4년만에 300조원 이상 불어난 것이다.

전문가들도 무리하게 나랏돈을 푸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고 있다. 앞서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얼마 전 열린 ‘상반기 경제전망’ 브리핑에서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 지출이 상당히 많이 돼 있다”고 진단하며 “이를 조금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쓰고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취약계층에 집중해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제언했다

양 측의 입장이 뚜렷하게 갈리면서 4차 재난지원금에 앞서 벌어졌던 보편·선별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올 초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 국민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을 한꺼번에 하겠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강경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나 여당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데다 늘어난 세수를 고려하면 이번에는 여당의 의지대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현금 퍼주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정책조정회의에서 “빚내서 추경하는 게 아니고 한참 남은 선거를 의식한 추경도 아니다”라며 “더 걷힌 세수를 정부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재정이 경제 회복을 발목 잡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난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지역경제가 살고 내수가 사는 선순환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