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귀 속에서 우는 매미 - 조석구

2021-03-21     천지일보

귀 속에서 우는 매미

조석구(1940 ~ )

매미는 한여름에만 우는 줄 알았다
늙고 보니 매미가 줄창 귀 속에서 운다
무상한 세월 앞에서 늙은 희망 하나로
매아매암 매암 맴맴맴 운다
어떤 때는 쓰르람 쓰르람 쓰르라미가 되어
도둑맞은 가난으로 울기도 한다

옛 선인들의
이명주(耳明酒)를 애써 생각는다

 

 

[시평]

나이가 들면, 몸의 이곳저곳이 조금씩 망가진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저리고, 눈에 무엇이 껴서 침침하고, 소화도 잘 안 되고. 나이가 들면 이곳저곳이 하나씩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칠십년, 아니 팔십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써 먹었으니, 아무리 좋은 재질이라고 해도 망가지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나이가 들고 기(氣)가 허(許)하여, 귀에서 이명(耳鳴)이 들린다. 마치 여름날 매미가 시끄럽게 울듯이, 귀에서 맴맴, 쓰르람, 쓰르람 하고 쓰르라미, 매미가 동시에 울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무상한 세월 앞에서 다만 늙어간다는 그 희망 하나로 울듯이 줄기차게 울어재끼는 귓속의 매미. 어떤 때는 쓰르람 쓰르람 쓰르라미가 되어 도둑맞은 가난으로 울기도 한다.

옛 문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오는, 보름날 이른 아침에 청주(淸酒) 한 잔을 데우지 않고, 귀 밝아지라고 마시는 술 ‘이명주(耳明酒)’가 한 잔 생각나는 노년의 아침. 매미는, 쓰르라미는 오늘도 쉬지 않고 늙은 귓속에서 울어재낀다. 희망의 시간도, 가난의 시간도 모두 모두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이 되어, 맴맴맴, 쓰르람, 쓰르람 하고 울어재낀다.

윤석산(尹錫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