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LH사태에 시민들 “모두 알던 문제… 정부가 방치, 사돈에 8촌까지 조사해야”
“LH 사태, 공직자 도덕적 해이의 결과”
“‘고위 공직=돈벌기 쉽다’ 인식생길까 우려”
“자본주의서 과도한 토지 보상이 불러온 화”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정부도 뭔가 잘못됐다” “(공직자들은) 국민의 혈세를 받아먹고 살면서 왜 그것을 망각하고 주인인양 구는가” “만약 정부가 토지 보상을 기준 시가로 했다면 아무도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달 초 제기된 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국민적 공분을 사며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이틀 새 LH 직원 2명의 사망 사건까지 발생했다.
정부가 대대적 수사를 예고한 가운데 예년 같았으면 주말엔 발디딜 곳이 없을 만큼 인파로 붐비는 명동을 찾아가 시민들의 반응을 들어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명동거리는 한산했고, 그나마 지나가던 시민들은 ‘LH 사태’에 대해 질문한다고 하자 감정이 고조됐다. 비판적인 시각이 주를 이뤘다.
길거리 토스트 점포를 운영하는 행상인 김모씨는 “(LH 직원들은) 나쁜 놈들이다. 끝까지 수사해 처벌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명동 거리를 산책 중이라고 밝힌 인구영(72)씨는 “(부동산 투기 문제가) 잠잠하고 있다가 터지니까 이제야 뒷수습하려고 한다”며 “이는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부동산 투기 문제가 이번에 새롭게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고, 정부가 이를 방치하다가 사건이 발생하니 수습하는 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의를 표명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해서도 인씨는 “본인이 사고를 쳐놓고 뒤에서 수습하려고 하는데 그게 될 리가 없다”며 “그로 인해 결국 불쌍한 서민들만 죽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인씨는 거리에 널린 부동산 임대 공고를 보고 “LH도 정부도 돈을 빌려준 은행도 뭔가 잘못됐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시민들은 이번 LH 사태 관련자의 도덕성에 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관광공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김모(31)씨는 “집을 구하지 못하거나 집세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LH직원들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을 조롱하는 내용의 글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LH의 직원 논란에 대해서도 “공공기관, 공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공부하는 내용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도덕성”이라면서 “(공직자들은) 국민들의 혈세를 받아먹고 살면서 왜 그것을 망각하고 주인인 양 구는가”라고 지적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김은영(65)씨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직자들의 도덕성 문제가 이번 사태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문제는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게 된 것에 있다”며 “정부가 도덕성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앞장서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좀도둑을 백날 잡아야 의미 없고, 큰 도둑을 잡아야 한다”면서 “정부가 국민의 의혹이 해소되도록 관련자의 사돈에 8촌까지 수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준서(20)씨는 “LH는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안으로는 불쌍한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20대 김씨도 “이런 일들을 통해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부당하게 돈을 벌기가 쉽다는 인식이 생긴다면, 노력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것(빚투)’처럼 투기가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며 걱정을 토로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독서를 하고 있던 이명국(60)씨는 “이번 사태는 가진 자들,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의 결과”라며 “권력을 가진 자들이 더 많은 정보로 부당이익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LH 간부가 투신한 건에 대해서도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며 “도덕적으로 떳떳했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투신은) 추후에 범행이 드러날 것이 우려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선거 전까지는 이슈가 되겠지만 그 이후에는 묻힐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와 선거는 분리돼야 하지만 정치인들이 이를 선거에 활용해 표몰이를 한 후 흐지부지해질 거라는 의미다.
이씨는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경찰과 함께 부동산 전문가들이 이를 분석해야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도덕성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수사가 아니라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부동산 중개소를 운영하는 최현준(가명, 70대)씨는 “도덕성이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도덕성을 논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번 LH 사태는 토지 보상으로 공시가의 2~3배의 보상을 해준다고 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비판했다.
최씨는 “자본주의 사회에 돈을 노리고 사람이 몰리는 것은 도덕성을 떠나 막을 수 없다”면서 “이번 수사로 관련자들을 모두 처벌해도 사회 전체의 제도상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고기들도 밥이 있어야 몰린다”며 “만약 정부가 토지 보상을 기준 시가로 했다면 아무도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