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을만나다] 조정래 감독 “‘귀향’ 제작, 해야 할 일이었다”

2016-03-12     이혜림 기자
▲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영화 ‘귀향’ 조정래 감독 인터뷰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이렇게 많이 봐주실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죠. 저희(스탭과 배우들)는 개봉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놀라고 있어요. 이렇게 된 것은 모두 국민 여러분 덕분입니다.”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화를 담은 영화 ‘귀향’이 지난달 24일 이후 폭발적인 흥행 질주를 이어가며 관객 300만 돌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귀향은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영화화된 극영화다. 1943년 14살 ‘정민(강하나 분)’이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 간 후 중국 목단강 위안소에서 잔혹한 대우를 받으며 위안부 ‘피해자’ 생활을 한다는 내용이다.

▲ 영화 ‘귀향’ 스틸. (사진제공: ㈜와우픽쳐스)

영화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 시설인 ‘나눔의 집’에 판소리 공연차 봉사활동을 간 조정래 감독이 강일출 할머니가 심리치료 중에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작성한 시나리오에서 시작됐다.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혀 순탄하지 않았다. 투자자들을 물색하러 다녔지만 “왜 인기 없는 영화를 찍으려 하느냐”며 등을 돌리기 일쑤였다. 감독은 전셋집을 월세로 바꿔 제작비에 보탰다. 다른 배우와 스탭들도 자신의 재산을 팔거나 대출받는 등의 방법으로 참여했다. 재일교포 배우는 자비로 항공비를 감당하고,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인들에게 일본어 공부까지 시켰다. 국내 배우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재능기부 형식으로 출연했다.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했던 제작비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마련했고 ‘귀향’ 티저 영상을 본 7만 5000여명의 후원자가 제작비 절반에 해당하는 12억원을 마련해줬다. 영화가 완성됐을 당시에도 상영관이 50여개로 적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 영화 ‘귀향’ 스틸. (사진제공: ㈜와우픽쳐스)

개봉 후 손익분기점 60만명이 훨씬 넘은 지금 ‘귀향’ 조정래 감독을 포함한 모든 관계자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장 기뻐한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었다. 

“투자계약서에 ‘영화 개봉이 안 되면 무료로 유튜브에 올린다’는 조항이 있어요. 배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유튜브 등에 영화를 올리겠다는 거죠. 돈을 벌고자 함이 아니라 영화를 알리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조건까지 감당하고 투자해준 분들이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죠. 누구도 대단하지 않은 분이 없어요.”

조정래 감독은 “영화를 보신 후 ‘고맙다’ ‘애썼다’ ‘나는 이렇게 앉아서 영화를 보지만 돌아가신 분들은 못 봐서 어쩌느냐’고 말씀하셨다”며 “마음으로 만든 영화라는 게 전달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제가 처음 가졌던 마음이 전달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진짜 보통 사람들보다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인식이 현격하게 낮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깨달아가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동시에 ‘왜 이렇게 해결되지 않을까’에 대한 분노가 있었는데 국민 여러분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참 감격스러우면서도 가슴이 아파요.”

요즘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어린 나이 소녀들이 끌려갔어야 했는지, 왜 끌려가는 딸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는지, 왜 아직도 피해 할머니들이 수요일마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시위하는 것인지 등을 말이다.

‘귀향’ 관계자들은 이를 알리고 싶었다. 조정래 감독은 “특히 저 같은 남성들, 일본사람들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영화를 통해서 단순히 고통과 고난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 영화 ‘귀향’ 스틸 (사진제공: ㈜와우픽쳐스)

영화의 수위는 15세 관람가지만 실제 할머니들의 증언은 29세 관람가다. ‘어떻게 이런 일을 겪고 견딜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잔인한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극히 일부만 보여주고 있다. 조 감독은 “들은 얘기는 ‘생각보다 수위가 낮았다’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엄청난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며 “어린 여성들도 아이들도 그렇지만 특히 남성 관객들이 더 우시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증언집의 100분의 1 정도인데도 충격적인데 실제 겪었던 분들은 살아계신 분들이고 돌아가신 분들은 어떻겠냐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다”며 “이것은 일본제국군국주의의 잔혹한 전쟁 범죄이자 인권을 무참하게 밟은 것이다. 전 세계에 알려야 하고 본보기로 보여줘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제 이름이 유명해지거나 드러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영화 마치고 다신 영화 안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이 영화를 끝내는 게 저한테 큰 미션이었죠. ‘귀향’을 계기로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문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게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죠. 끈기나 사명이 이런 개념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죠.”

판소리 고수인 조정래 감독은 앞으로 차기작 조선 시대 판소리 광대 이야기를 통해 다시 관객을 만날 계획이다. 영화에 진심을 담는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