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칼럼] 영화 ‘어쩔수가없다’ 와 ‘김부장’ 그리고 AI
AI는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만수(이병헌 분)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상황임을 애써 감독은 부각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범죄 행위로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제지 회사에 재취업한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은 결국 기존 인력까지 감축시키고, 인공지능(AI) 시스템에 따라서 통제 관리하는 일이었다. 로봇들이 제지 공정 과정을 하고 있고, 인간은 오로지 만수뿐이었다. 이런 결말은 을씨년스러울 뿐이었다. 여러 사람이 했던 일을 단 한 사람만이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단출하게 만드는 모습은 비단 영화의 설정만은 아닐 것이다. 먼 미래도 아니고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 상황도 이미 그러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3년 동안 15~29세 일자리 21만 1000여개가 감소했는데 감소분의 98.6%가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정보서비스업, 출판업 등이 대체적으로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50대의 일자리는 20만 9000여개가 늘어났는데 이런 일자리의 약 70%도 AI에 많이 노출되는 직종이었다. 신규 인력을 뽑지 않고 새로운 경력직들이 AI 프로그램이나 테크닉을 활용해서 관리직을 수행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김부장)’에서 김낙수 부장(류승룡 분)은 아마도 재취업에 충분히 성공할 것이다. 물론 AI를 활용하는 직종에 말이다. 굴지의 대기업 이동통신회사에서 25년간 근무했는데 그 정도의 전환은 충분한 것이 드라마와 다른 현실이다.
우리 기업들의 69.2%가 채용할 때 AI 역량을 고려한다거나 AI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69.4% 응답도 누구를 뽑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아마도 신규 인력을 뽑아서 트레이닝 시키기보다는 이미 숙달된 경력자를 뽑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더구나 금융과 같은 서비스 업종뿐만 아니라 피지컬 AI가 도입되면 산업 현장에서 더욱 이런 상황이 급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만수 같은 살육을 벌이는 일이 도처에 생길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러한 여력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만수와 김낙수는 지키고 유지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런 것조차 없는 이들은 동기부여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AI로 만들어내는 그 결과물이 만족스러울지는 알 수가 없다. AI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는 직종 가운데 하나는 성우로, 전 분야에서 성우의 음성을 AI가 대체하고 있다. KBS는 전속 성우를 16명에서 8명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그들은 전속이라고 해도 2년 계약직인데 말이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이 이에 대해서 청원을 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각 장애인들이 많이 듣는 라디오 드라마 등이 없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미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선정하고 낭독했던 라디오 여행기와 같은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더구나 지역 총국을 중심으로 AI 앵커를 기용하겠다는 것인데 그 품질과 퀼리티가 보장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액티비전이나 엠바크 스튜디오가 만든 슈팅 게임의 경우 AI를 활용한 이미지와 음성이 사용됐는데 부자연스럽고 성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게임 유저들의 몰입에 방해가 된다면 이는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업계에서는 대세라고 하지만 그 퀼리티는 물론이고 조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음성은 영혼이 없다는 치명적인 비판을 받았다. 정교한 게임 플레이 설계에 비해 오히려 AI 콘텐츠가 이를 상쇄하거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다. 이런 성우의 음성은 아무래도 젊은 성우들의 일자리가 AI에게 할당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성우의 음성을 생각할 때 흔히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있는데 성우의 목소리는 그냥 사운드가 아니라 목소리 연기라는 점이다. 성우라는 뜻 자체가 소리 연기자라는 뜻이다. 과연 감정 연기가 중요한 성우의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본 학습 자료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지난 5월에 이미 할리우드 배우 방송인 노조(SAG-AFTRA)가 에픽게임즈의 슈팅 게임 포트나이트의 AI 캐릭터의 음성 활용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부당 노동행위로 제소했다. 여기에서 쟁점은 이 음성조차 인간 특히 성우 음성에 바탕을 뒀던 점이다. AI 음성 산출에 쓰인 성우 음성 자료에 대해 대가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우만이 아니라 뮤지션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독일의 뮌헨지방법원은 독일음악저작권협회가 오픈 AI 측에서 독일 노래 9곡의 가사를 무단으로 훈련 데이터에 사용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용료를 내지 않고 가사를 복제·저장했다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사실 유사한 사례가 매우 많이 소송 중에 있기 때문에 비슷한 판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만약 유명한 가수가 아닌 이런 소송 전을 할 수 없는 가난하고 젊은 뮤지션이라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그나마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결집이 가능하고 여력이 있는 이들인 셈이다. 사실 정부는 이러한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존립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공공기관이 더 AI를 활용하고 결과물을 내며 경비 절감이나 경제적 효과를 과시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미래세대의 기회가 박탈되고 꿈을 잃고 있는 점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그 결과물이 소망스러운지 알 수도 없다. 따라서 AI 콘텐츠나 서비스가 안정화되거나 고도화되기 전까지 공공기관에서는 사람 대신에 AI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관련 입법도 필요하다. 기관 평가에서도 AI를 활용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평가의 기준이 돼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근원적인 일을 도외시하고 당장의 효율화에 몰입하는 그로테스크한 행정이 구가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