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전산망 마비 국정자원 화재, ‘人災’ 결론… 원장 등 19명 입건(종합)
별도로 업체 대표·임원 10명 전기공사업법 위반 혐의 입건 배터리 전원장치 미차단 작업 불법 재하도급 등 위법 확인 “다음달 중 사건 송치 예정”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정부 전산망 마비를 초래했던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이재용 원장을 포함한 국정자원 관계자와 시공업체 관계자 등 총 19명을 무더기로 입건하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화재는 작업자들이 무정전·전원장치(UPS) 본체와 연결된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는 등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였으며 공사 전반에서 불법 하도급이 만연했던 것으로 드러나 총체적인 관리 부실이 확인됐다.
대전경찰청은 25일 화재 발생 원인과 관련자들의 혐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밝히고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을 포함한 국정자원 관계자 4명, 시공업체 현장 소장 및 실제 작업자, 책임 감리 등 9명을 업무상 실화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해당 공사를 낙찰받은 업체부터 실제 공사를 진행한 업체에 이르기까지 5개 업체 대표 및 임원 10명은 전기공사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특히 재하도급을 받아 실제 작업을 진행한 A업체 대표 1명은 업무상 실화 혐의도 함께 받고 있어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작업자들이 UPS 시스템에 연결된 배터리를 이전하는 작업 중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와 경찰의 수사 내용을 종합하면 작업자들은 UPS 본체 전원과 1번 배터리 랙 전원만 차단했을 뿐 연결된 각각의 배터리 랙 상단 컨트롤 박스(BPU) 전원 8번까지 모두 차단하고 전선을 분리해 절연 작업을 해야 하는 핵심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작업 부주의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경찰 관계자는 “UPS 전원 차단 후 연결된 각각의 배터리 랙(1번~8번) 상단 컨트롤 박스(BPU)의 전원을 모두 차단 후 작업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1번 랙 전원만 차단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BPU에 부착된 전선을 분리해 절연작업을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작업 시작 전 슈퍼바이저가 안전조치에 대해 안내했으나, 정작 작업에 투입된 하도급 업체 직원 2명은 다른 곳에 있어 설명을 듣지 못했고 현장소장 또한 이들에게 재차 설명하지 않고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과수는 화재가 4번 랙 작업을 마치고 5번 랙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4번과 5번 랙에서 발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화재 당시의 폐쇄회로(CC)TV 영상과 국과수 재연 실험 결과를 비교 대조한 결과 섬광 유무, 비산 유무, 연기의 색 등을 감안할 때 리튬이온 배터리 자체의 열폭주에 의한 화재 가능성은 배제된다고 밝혔다.
이 원장 등 국정자원 관계자 4명은 전기공사 시 안전조치 이행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공 및 재하도급 업체 관계자들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상의 전원 차단, 절연 작업 등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공사 전반에 걸쳐 전기공사업법상 원칙적으로 금지된 불법 하도급이 만연했다는 점이다.
조달청에서 낙찰받은 공동이행 방식의 30억원 상당 공사를 수주한 업체 2곳이 시공업체에 불법 하도급을 줬고, 이 업체가 다른 업체 2곳에 또 재하도급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사고 당시 작업에 참여한 업체는 조달청에서 낙찰받은 두 곳이 아닌 다른 업체였다. 이 업체 또한 작업의 일부를 또 다른 2개 회사에 재하도급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시공업체 소속 작업자 2명은 파견 형식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현장소장은 퇴사 후 수주받은 업체 소속인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정자원 측은 경찰에 작업자들 모두 수주 받은 업체 소속인 줄 알았으며 불법 하도급 및 재하도급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정자원 관계자들은 전기공사 시 안전조치 이행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를 받고 있어 최종적으로 책임 여부가 가려질 예정이다.
조대현 대전경찰청 형사기동대장은 “업무상실화 사건과 전기공사업법 위반 사건에 중복 입건된 슈퍼바이저를 포함해 총 19명을 입건한 상태로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다음달 중 사건이 마무리되면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입건한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검찰에 넘길 방침이다. 경찰은 수사와 별개로 위험성이 큰 리튬이온 배터리 이설 작업 관련 공식 매뉴얼 정비를 해당 정부 부처에 권고할 계획이다. 또한 전기공사업법상 형사처벌은 명의대여자뿐만 아니라 하도급을 받은 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행정처분은 명의 대여자나 하도급을 준 자로만 규정돼 있는 불합리한 점을 해소할 개정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