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사설] 장기적 비전없는 한반도식 통일 해법, 독일 통일과 달라야 한다

2025-11-23     천지일보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독일의 메르츠 총리에게 “통일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가벼운 농담처럼 던졌지만 한국 외교가 반복해 온 익숙한 장면이 또다시 연출된 셈이다. 문제는 이 장면이 오래도록 한국 정치가 통일 문제를 외부의 지혜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메르츠 총리는 “비밀은 없다”고 답했다. 사실 이는 외교적 겸양이 아니라 명확한 메시지다. 독일 통일은 특정한 전략이 아니라 수십년에 걸친 꾸준한 교류, 제도적 축적, 그리고 냉전 붕괴라는 구조적 요인의 산물이었다.

그 어떤 한 나라가 고스란히 가져다 쓸 ‘노하우’ 따위는 없다. 그런데도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일 정책을 새로 만드는 데 급급했고, 장기적 비전 없이 외교적 수사만 반복해 왔다. 이번 ‘노하우’ 질문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한국 사회는 통일 논의에서 자주 독일 통일을 ‘성공 모델’로 꺼낸다. 하지만 독일 통일 경험은 참고는 될 수 있지만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역사적 구조, 조건, 배경, 국제정치, 경제 수준 등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은 1989년 이미 냉전이 붕괴되는 흐름 속에서 이뤄졌다. 소련은 경제적 여건 악화로 동독 유지 의지가 약했다. 미국·영국·프랑스는 서독 중심의 통일을 수용했다. 통일을 둘러싼 열강 간 이해가 비교적 조화됐다.

반면 한반도는 다음과 같은 전혀 다른 구조에 놓여 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이 첨예하다. 일본·러시아·중국·미국 모두 한반도 질서에 직접 이해가 걸려 있다. 동북아는 어느 강대국도 한국 주도의 통일을 전략적으로 그냥 허용하지 않는다.

남북한은 6.25전쟁을 통해 동족 상잔의 엄청난 피해를 겪었다. 한반도 적화 야욕을 버리지 않는 북한은 핵·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군사체제가 국가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으며, 통제·검열·세습체제를 유지하는 수령체제가 존재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체제 붕괴, 군사 충돌, 핵 관리 문제 등 훨씬 복잡한 위기를 동반한다. 독일의 평화적 통일과 동일선을 놓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를 논의하면서 독일의 지지를 구하는 것은 상징적 의미는 있다. 하지만 통일 경험을 그대로 빌려올 수 없다는 것은 독일도, 국제사회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매번 독일 통일을 언급하는 것은 정작 한국 내부의 합의 부족과 정책 일관성 부재를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남긴다.

이번 한·독 정상회담은 외교적 채널을 넓히는 의미는 있으나, 그 이상의 비전이나 구조적 변화는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이 통일과 외교의 전략을 진정으로 업데이트하려면 해외의 경험을 묻는 것보다 국내에서의 장기적 정책 축적과 정치적 신뢰 회복이 먼저다. 필요한 것은 남의 ‘노하우’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지속 가능한 통일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