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논단] 북한의 제2건국 선언 함의와 4대 세습 준비

2025-11-23     천지일보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북한 정권은 여러 차례 변해야 하는 시기를 놓쳤다. 타이밍의 실기, 이것이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 건이다. 그런데 근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결기를 보여주었다.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80주년 대집단체조에서 그 결기를 형상해 냈다. 김일성·김정일의 ‘김’자도 안 꺼내며 그들과의 아듀를 선언했다.

그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8일 ‘제2의 건국시대’를 선언했다. 구체적인 구상은 내년 1월 9차 당 대회를 거치며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제2의 건국 선언이 주는 함의는 대단하다고 사료된다.

일각에서는 그 의미를 축소하며 다만 적대적 두 국가론과 연결해 체제를 재정의하려는 전략적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지만 간단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제2의 건국은 김정은 자신을 새 시대의 창건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로 보이며 김주애 후계자와 투톱 체제를 과시하는 모습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김일성이 제1의 창건자, 김정일이 과도적 계승자라면, 자신은 북한을 재건국한 새로운 창시자라는 서사를 내건 것이다.

자신의 선대 수령들을 과감하게 지우는 데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어느 누구도 해 보지 못한 대역사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장 시대를 자신이 완성했고 그 국방력의 기반 위에서 이제 경제와 정치 등에서 자신의 통치스타일을 과감하게 촉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당 창건 80주년 행사는 제2의 건국시대 서사를 각인시키는 상징적 장면들이 연출됐다.

중국 80주년 전승절 열병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오른 김 위원장은 중·러 2인자인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베트남 권력 서열 1위 또럼 서기장과 함께 열병식 주석단에 나란히 올랐다.

이번 평양의 정치행사에 대표단을 보낸 국가는 11개국으로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2011년 이후는 물론 김정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북한이 이만큼 대접받은 행사는 찾기 어렵다. 북한은 이를 3대 세습의 영도력으로 이뤄낸 핵 무력 완성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장장 80성상에 단 한 번의 노선상 착오나 오류도 없었다”고 했다. 수백만명을 아사로 몰아간 ‘고난의 행군’과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당혹감과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던 김정은의 표정을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억지주장이다.

벼랑끝으로 치닫던 북한의 처지가 반전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2017년 취임한 트럼프는 북한을 최우선 외교 과제로 내세웠다.

북핵 문제를 최고의 난제로 꼽았던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여러 차례 밝혔다. 트럼프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북한의 몸값은 치솟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동참으로 실존적 위기를 맞았던 북한은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5차례, 푸틴 대통령과 3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이 제2의 건국을 선언하며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있다. 그렇다면 제2건국을 위한 북한 정권의 내부적 동력은 어떤가?

북한의 사회주의 관성은 이미 막을 내린 지 30여 년이 지났고 자강력 제일주의는 빛바랜 누더기가 돼 버렸다. 최근 간부들에 대한 엄포로 채찍을 들고 있지만 모두 주저 앉은 간부들과 인민들을 다시 뛰게 만들 그 어떤 당근도 김정은 위원장에겐 고갈된 지 오래다.

다행히 평양에 우호적인 이재명 정부 등장으로 북한 정권이 지불해야 할 안보 비용은 절감이 되겠지만 그것도 시효가 있다. 유일한 대안은 중국을 따라 개혁과 개방을 선언하는 건데 과연 내년 1월 개최될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그와 같은 결단이 내려질지 모두가 평양을 좌시하고 있다. 그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심 하나로 해결될 간단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