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in] 빙하 녹자 ‘골드러시’… 치열한 세계 북극 광물 쟁탈전
각국 자원 안보 강화 가운데 기후변화로 빙하 녹은 영향 북극 항로 활발, 접근성 개선 美·加·러 각국 북극 전략 발표 혹독한 기후·물류 문제 여전 “상업 수익에 20년 걸릴수도”
[천지일보=이솜 기자] 전 세계가 북극의 미개척 자원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급속도로 가속하는 양상이다. 북극의 지형과 접근성이 바뀌면서 수십년간 닫혀 있던 이 지역이 단숨에 전략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미국·러시아·유럽 등이 중국 의존을 벗어나 자원 안보를 강화하려는 가운데 그린란드와 스웨덴 등 북극권 국가들이 글로벌 광물 공급처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북극권 자원 확보 경쟁의 양상은 최근 뚜렷하게 변했다. 과거에는 탐사나 전략 발표 수준에 그쳤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돈줄’이 움직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미국이다.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한 상황에서, 미국은 그린란드를 ‘탈(脫)중국’의 핵심 기지로 낙점했다. 실제로 미국 수출입은행(EXIM Bank)은 최근 그린란드 남부의 ‘탄브리즈’ 희토류 프로젝트에 대해 약 1억 2천만 달러(약 1600억원) 규모의 대출 지원 의향을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도 아닌 해외 광산 프로젝트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전략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사례다.
현장의 분위기도 달아올랐다. 그린란드에서 희토류 자원을 개발 중인 크리티컬 메탈스의 토니 세이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달 사이 투자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골드 붐, 오일 붐, 테크 붐이 있었다면 지금은 바야흐로 ‘희토류 붐’의 시대”라며 막대한 자본이 북극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이 영토를 장악할 가능성을 거론한 이후 더욱 그렇다는 설명이다.
북극의 가치는 희토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그린란드 서부에서는 서방 세계의 안보와 직결된 새로운 광물들이 발견됐다.
광산 기업 ‘아마록 미네랄스’는 지난 11일 그린란드 탐사 프로젝트에서 상업 채굴이 가능한 수준의 게르마늄과 갈륨 매장지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두 광물은 반도체, 5G 통신 장비, 군사 레이더 등에 필수적인 소재지만 중국이 전 세계 공급의 90% 이상을 통제하며 수출 제한을 걸고 있는 품목이다.
기후 변화로 수십년간 얼어붙었던 북극이 녹아내리며 북극 광물은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발표한 아틱 리포트 카드 2024에 따르면 북극 해빙 면적은 장기 평균치를 지속적으로 밑돌고 있으며 여름철 항해 가능 기간은 과거보다 뚜렷하게 길어졌다.
그린란드는 눈에 띄게 변화했다. 영국 리즈대 연구진이 지난해 발표한 위성 이미지 분석에 따르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의 빙상과 빙하 일부가 습지나 관목지대, 바위 지대로 대체됐다.
이 지형 변화는 북극 항로의 현실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북동항로(NSR)와 북서항로(NWP)는 여름철 운항일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와 해운사가 시험 운항에 나서고 있다. 기존 수에즈·말라카 중심의 세계 해운 체계가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지적된다.
20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노르웨이 북극대학교의 마크 란테인 부교수는 “북극은 많은 종류의 원자재 즉 석유와 가스뿐 아니라 다양한 전략적 자원과 희토류의 공급원으로 여겨진다”며 “지금 그린란드는 많은 비철금속, 귀금속, 보석, 희토류, 우라늄의 저장고다. 문제는 최근까지 실제로 이를 채굴하는 것이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졌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기후 변화로 북극해 항해가 훨씬 잦아지고 특히 여름철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그린란드는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전략 자원의 잠재적 공급원으로 훨씬 면밀하게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토착민·생태계·해양 환경 고려해야”
북극의 변화는 곧바로 지정학적 경쟁을 자극했다.
미국은 2022년 이후 북극 전략을 잇따라 갱신하며 그린란드의 전략 가치를 강조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안보·에너지 측면에서 그린란드 확보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해왔다.
캐나다도 최근 북극 투자 확대에 나섰다. 특히 미국과의 외교적 관계가 긴장된 가운데 자원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러시아는 북극 해안선을 가장 길게 보유한 강국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핵 추진 쇄빙선 전력과 북극 항로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을 ‘국가 전략의 최우선 지역’으로 규정하고 군사·해운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중국은 ‘근북극 국가(near-Arctic state)’ 전략을 내세워 과학 연구소, 항로 투자, 자원 협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북극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메르카토르 중국학연구소(MERICS) 보고서는 이를 “중·러 북극 협력 심화”의 흐름으로 평가했다.
유럽도 적극적이다. 유럽연합(EU)은 ‘EU 북극 전략’을 통해 북극을 ‘전략 공간’으로 정의했다.
전문가들은 북극에 숨겨진 자원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지만 실제 개발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북극이라는 공간이 가진 물리적·경제적·사회적 장벽 때문이다.
디 이코노미 오브 더 노스(ECONOR) 2025는 북극 자원의 경제적 잠재력은 증가했지만 기반시설 부족과 물류 비용, 극한 기후가 여전히 큰 장벽이라고 분석했다.
광산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건 채굴 기술이 아니라 ‘광산 주변’이다. 도로, 항만, 전력망, 항공 지원 체계, 장비 수송 경로 등이 모두 필수인데 그린란드·북극 스웨덴·캐나다 북부 등은 대부분 이런 인프라가 거의 없다. 광산 장비를 옮기려면 항공기와 임시 부두·도로를 새로 만들어야 하고 심지어 겨울철에는 중장비가 얼어붙어 투입을 중단해야 한다.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는 2025년 보고서에서 “북극의 중요 광물 개발이 상업적 생산으로 이어지기까지 최소 15~20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채굴뿐 아니라 도로·항만·전력망 등 주변 인프라를 ‘처음부터 수입해와야 하는’ 지역 특성 때문이다.
북유럽연구지원기구 노르드포르스크(NordForsk)는 북극 자원개발이 토착민·생태계·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경고하며 “북극 개발은 단순한 경제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복합적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불확실성도 개발 속도를 늦춘다. 그린란드처럼 주민투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지역은 채굴 인허가가 정권 교체·정책 변화에 따라 뒤집힐 수 있다.
스웨덴 국영 광산회사 LKAB는 스웨덴 북부 키루나에서 대규모 희토류 원소 광맥을 발견하는 등 유럽 최대 규모의 북극 광물 프로젝트 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LKAB는 CNBC에 “이미 지하에서 광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린 상황인데도 사업성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게 아니다”라며 “인프라가 갖춰진 우리조차 경제성이 불확실하다면 다른 유럽 기업들은 더 큰 난관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