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 김제 만경교회 순교기념관서 희생자 추모

반공 연루 만경교인 15명 희생 태극기 든 청년·목사도 비극 “유가족 관련 입법 보완 시급”

2025-11-21     배다솜 기자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오른쪽에서 다섯번째)이 21일 오후 전북 김제시 만경교회 희생자 순교기념관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관련 유가족들 및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진실화해위)

[천지일보=배다솜 기자]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21일 전북 김제를 찾아 한국전쟁기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기독교인들의 흔적을 둘러보고 유족을 위로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김제 만경교회에서 열린 순교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기독교계 관계자와 유족을 만났다. 순교기념관은 1950년 인민군 후퇴기 만경분주소(현 만경파출소) 일대와 전주형무소에서 벌어진 집단희생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됐다. 당시 만경교회 교인 15명은 반공혁명단 조직에 연루됐다는 이유 등으로 끌려가 우물 2곳과 방공호 등에서 잔혹하게 희생됐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개관식에 앞서 박 위원장은 현재 만경파출소 자리로 옮겨져 있는 사건 현장을 먼저 찾았다. 희생자 유족인 송봉호 목사는 박 위원장에게 ‘당시 교인들이 어떻게 끌려갔고 어떤 방식으로 매장됐는지’를 설명하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만경교회 교인들의 희생 경위는 1950년대 작성된 ‘만경교회 교회록’에 기록돼 있으며 원본은 순교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진실화해위는 해당 교회록을 제공한 만경교회에 올해 ‘진실규명 기여자 보상금’ 800만원 지급을 결정한 바 있다.

만경교회 교회록. 만경교회 교회록 ‘104회’에는 희생자 15명의 성명, 성별, 교회직급, 나이, 희생장소 등이 상세히 기록돼 진실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 (제공: 진실화해위)

박 위원장은 이어 김제 대창교회 역사기념관을 방문해 희생 경위를 들었다. 한국전쟁 직후 인민군이 교회를 점령하면서 예배가 중단됐고 태극기를 들고 나선 청년들이 총격을 받으면서 갈등이 격화된 사건이다. 이후 교인 3명은 저수지에서 희생됐고 대창교회 목사도 교인들과 같은 교회라는 이유로 지방좌익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진실화해위는 올해 이들 4명의 희생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만경교회 순교기념관은 ‘기념물이 없는 기념관’으로도 주목받는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임우진 건축사가 설계해 건물 내부 전시물 대신 희생자들이 발견된 우물과 방공호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한 ‘무형 추모 공간’이다. 방문 시기와 햇빛, 계절에 따라 매번 다른 풍경이 연출되도록 기획됐다. 인근에는 이탈리아 조각가 안드레아 로찌의 작품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가 설치돼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한다.

박 위원장은 “(위원회의) 종교인 희생자 진실규명 이후 순교기념관이 문을 여는 등 이번 김제 방문은 희생자 명예회복과 용서, 화해를 위한 각계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2기 활동 중 현장을 찾으며 느낀 것은 아직도 풀어야 할 진실규명 과제가 많다는 점”이라며 “3기 위원회의 조속한 출범과 함께 유가족 관련 입법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김제 방문은 2기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를 이달 26일 앞두고 박 위원장의 마지막 현장 일정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