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현대판 궁예의 관심법… “공무원 속을 들여다본다?”

2025-11-20     천지일보

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요즘 정부가 내놓는 정책을 보면, 현실인지 풍자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란에 동조한 공무원을 판별해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이 대표적이다. 

마치 태봉의 궁예가 자신의 ‘관심법’으로 신하의 마음을 읽겠다고 하듯, 정부는 이제 공무원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공무원을 포함해 전 국민이 참여한 투표로써 대통령으로 당선돼 정부를 조직하지 않았는가. 아직까지도 자신을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존경하는지 의심에 가득 찬 모양새다.

정부 측은 “공무원은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국가정체성을 지키는 사람”이라며 이념 검증 필요성을 부각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헌법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공무원이 국가에 봉사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 입장에는 일면 타당한 점이 있다. 국가에 대한 일정 수준의 충성이나 헌법 질서 존중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가진다. 실제 일부 국가에서는 공직자의 이념 성향이나 극단주의적 성향에 대해 제한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과 그 속내다.

◆십자가 밟기와 무엇이 다른가

정부의 이번 방침은 ‘내란에 동조한 공무원’을 찾아내겠다는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정작 기준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동조’ 여부를 판단하는가. 과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 개인 간에 주고받은 문자 혹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행만으로 내란 동조자로 낙인찍을 것인가.

선출직의 민낯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직군이 일반직 공무원들이다.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발목잡기 작태를 누구보다도 잘 기억하는 자들 또한 공무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입에 자물쇠를 걸고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 일부 정무직 공무원을 제외한 공무원 대부분은 정치에 참여하거나 선거운동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금님 없으면 흉도 본다”는데, 선거운동 참여 자체가 금지된 공무원들이 SNS를 통해 답답한 심정을 토로해도 비난받아 마땅한 것일까.

검증 대상 공무원들은 휴대폰을 자진해서 제출하고 이에 불응한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요즘 세대는 ‘내 마음은 머리가 아니라 휴대폰에 있다’고 하는데, 그 휴대폰을 제출하란다. 이쯤 되면 사상검증, 양심 검열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바로 표현과 양심의 자유인데, 이번 정책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비유하자면 ‘십자가를 밟으면 살려주겠다’는 식이다. 

일본 에도시대에는 기독교인 색출을 위해 십자가를 밟게 했다. 주저하면 신자로 간주해 처벌한 방식이다. 검증 대상 공무원들에 대한 휴대폰 자진 제출 요구는 ‘십자가 밟기’와 무엇이 다른가.

정치적 중립성과 행정의 독립성은 헌법이 보장하는 원칙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공무원의 충성은 국가가 아닌 정권을 향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듯하다. 사실상 공무원 조직을 정권에 복속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생각’만으로 불이익받을 수 있는가

상당수 전문가는 이번 조치를 사실상 ‘충성 테스트’를 빌미로 한, 편 가르기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고위 공무원은 “이런 식이면 앞으로는 능력보다 이념 검증을 통과한 사람만이 승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건 능력주의가 아니라 충성 주의”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학자는 “사상 검열을 통해 특정 정치 성향을 제거하고자 한 의도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대한 부정”이라며 “정부가 말하는 ‘내란 동조’는 사실상 자의적인 기준이며, 정권 비판자를 낙인찍는 데 쓰일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방침은 ‘정권 충성형 인사관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정 성향으로 의심을 받는 공무원은 ‘잠재적 위험인물’로 간주될 수 있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공무원은 충성 부족이라는 이유로 도려내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비판과 반대의 자유를 존중해야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판과 반대는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능이다. 공무원 역시 한 명의 시민이며, 투표권을 가진 주권자다. 

내란을 둘러싼 정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국 비판을 억누르고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로의 퇴보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게다가 이번 조치는 공무원 사회에 공포심을 조장하며, 조직 전체를 정권의 하부조직으로 만들려는 시도로도 비친다. 만약 공무원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오직 정권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 이념 검증과 사상 탄압은 국가를 위협으로부터 지키기는커녕 내부를 병들게 했고,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졌다. 그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번 방침은 다시 상기시킨다.

정부가 정말 국가 안보와 헌법 질서를 지키고 싶다면, 그 출발점은 ‘양심의 자유’ 보장이어야 한다. 신념과 책임감에서 우러나는 충성만이 국가를 튼튼하게 만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무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관심법’이 아니라, 공직사회를 진정으로 신뢰하고 성숙하게 운영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상식이다. 

◆정당화 논리로 모방·악용 우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일부 세력이 정부의 마땅치 않은 행태를 모방해서 정당화 논리로 악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권력이 자기편에 유리한 기준을 만들어 상대를 배제하고, 그 배제를 정의로 포장하는 방식은 결국 사회 전체에 ‘힘 있는 자가 정의를 재단한다’는 왜곡된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의는 공동체의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권력자의 필요에 따라 바뀌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리한 정책을 당당하게 집행하려는 힘 있는 세력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존경하는 마음”은 강요로 생기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