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남아시아 이슬람 지도자들이 방글라 방문한 ‘수상한 이유’
방글라데시는 2026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불안정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이다. 여당의 몰락, 야당을 둘러싼 각종 논란, 과도정부의 국민투표 추진 등으로 정국이 요동치는 가운데 최근 인도·파키스탄·네팔 등 주변국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잇따라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 현지 매체 라이징bd(Risingbd)의 기자 입눌 카얌 소니는 이러한 방문의 배경을 둘러싼 국내외의 다양한 해석과 방글라데시 정치, 종파 갈등, 지역 지정학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를 짚었다.
극심한 정치 불안정에 놓인 방글라
축출된 전 총리는 사형 선고받아
인도·파키스탄·네팔 이슬람 지도자
최근 일제히 방글라데시에 입국해
다카 등 지방 집회 참석해 논란 일어
친선 목적 해명에도 정치 목적 의심
반(反)아흐마디야 운동 강화 가능성
종파 이슈에 선거 불안정, 긴장 커져
방글라데시는 현재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극심한 정치적 불안정 속에 있다. 오랜 기간 권력을 쥐어온 여당 아와미연맹(Awami League)이 몰락해 정치 활동이 금지된 가운데 재집권을 노리는 제2당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은 금품 갈취·살인·강간 사건 등 당원 관련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제3당인 자티야당은 사실상 활동이 멈춘 상태이며 신생 정당 전국시민당(NCP)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자마트-에-이슬라미(자마트)를 비롯한 이슬람 정당들이 다시 세력을 확대하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2026년 2월 총선을 앞두고 ‘7월 헌장’ 국민투표 문제가 또 다른 정치적 충격파를 일으켰다. 지난달 17일 국회의사당 앞 남광장에서 ‘국가적 합의위원회’와 25개 정당이 함께 서명한 이 문건은 국가의 합의 기반 민주개혁 방안을 담고 있다.
과도정부 수장인 무함마드 유누스 최고 고문(총리격)은 최근 대국민 연설에서 국민이 네 가지 이슈를 하나의 질문으로 묶어 ‘찬반’ 투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투표를 총선 이전에 할지, 같은 날 치를지를 두고 정치권은 강하게 대립했고 정당 간 논의는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지난 13일, 유누스 고문은 직접 TV 연설을 통해 총선과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1억 2769만여명의 유권자들 사이에 큰 혼란을 낳았다.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은 각자 방식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표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잦은 당내 충돌, 공공연하거나 은밀한 테러·살인 사건도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국제전범재판소(ICT)는 지난해 7~8월 대규모 민중 봉기 당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며 축출된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판결이 나온 지난 17일 오전, 재판소 주변에는 철통같은 경비가 배치됐다. 당시 봉기에서 부상한 시위대, 희생자 유가족, 학생운동 지도부가 이날 아침부터 법원에 모여 판결을 지켜봤다.
2010년 하시나 정부가 전범 재판을 위해 처음 설치한 법정이, 15년 만에 오히려 하시나 본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하시나는 현재 인도로 도피 중이다.
판결 뒤 국내외 언론에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축출된 아와미연맹과 그 주변 조직들은 이번 판결에 반발해 전국적 교란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복잡한 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역사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지난 11일 인도·파키스탄·네팔에서 영향력 있는 이슬람 지도자들이 잇따라 방글라데시에 입국했다. 이들은 다카와 여러 지역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했다.
이미 다카에 도착한 인물로는 파키스탄 자미아트 울레마-에-이슬람의 총재이자 국회의원인 마울라나 파즐루르 레만, 같은 조직의 사무총장 마울라나 압둘 가푸르 하이데리 등이 있다. 레만 총재의 아들 아사드 마흐무드 전 통신장관을 포함해 파키스탄 자미아트 지도부 2명이 동행했다.
또한 파키스탄 라왈핀디의 마르카주 나딤울 꾸란 마드라사 책임자 마울라나 사이드 파이살 나딤 샤, 파키스탄 최대 디오반디 학파 네트워크인 위파크 울 마다리스 알-아라비아의 사무총장 마울라나 하니프 잘란다리, 유수프 비누리 타운 마드라사의 아흐마드 유수프 비누리 박사, 다룰 울룸 카라치 부총장 마울라나 주바이르 우스마니, 펀자브 사르고다의 마르카즈 아헬 순나트 왈 자마아트 지도자 마울라나 일리아스 구만 등도 방글라데시에 와 있다.
인도에서는 자미아트 울레마-에-힌드의 총재 마울라나 사이이드 마흐무드 마다니, 인도 다룰 울룸 데오반드 마드라사 무흐타밈(총책임자) 무프티 아불 카심 노마니 등이 도착했다. 네팔에서는 자미아트 울레마-에-이슬람 네팔 총재 마울라나 칼리드 시디키가 왔다.
이들 대부분은 종교·정치 양쪽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몇몇은 정치 활동과 관련된 논란도 안고 있다.
한 나라의 종교·정치 지도자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 자체는 문제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인도–파키스탄 사이의 역사적·정치적 관계를 고려하면 이번 방문은 단순한 ‘친선’으로 보기 어렵다.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음모의 씨앗을 뿌릴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 불신의 뿌리는 오래됐다. 1947년 영국 식민지 종료 이후 인도 분할로 탄생한 파키스탄은 지리적으로 떨어진 서파키스탄(현 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으로 구성됐었다. 이후, 착취, 억압, 박탈에 대한 항의로 파키스탄의 두 부분은 1971년 9개월간의 길고 피 흘리는 갈등 끝에 분리됐다. 방글라데시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으며 파키스탄도 별도의 정체성을 얻었다.
1971년부터 2025년까지 이 54년 동안 전 세계는 과학과 지식을 포함한 많은 영역에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파키스탄과 인도 또는 방글라데시와의 관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인도 역시 방글라데시를 이웃으로서 존중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방글라데시 내부에서도 정당들이 만들어온 복잡한 정치 지형이 있다. 축출된 아와미연맹은 전통적으로 친인도 성향이었다. 반면 자마트는 1971년 분리를 반대했고 당시 민병대에 참여해 학살 연루 혐의를 받은 당원들도 있었다. 정부가 1972년 자마트의 정치 활동을 금지했을 때 지도부는 파키스탄으로 망명했지만 1977년 지아우르 라흐만 집권 뒤 금지가 풀리며 1979년 자마트 방글라데시가 재편됐다.
방글라데시·파키스탄·인도, 이 세 나라 자마트의 정신적 지도자는 인도의 아불 알라 마우두디다. 방글라데시 자마트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튀르키예의 AK당과의 연계도 인정한다. 또한 인도 데오반디 지도자들과도 연결돼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도 긴밀한 교류가 있다.
◆지도자들 방문, 종파 문제 연관됐나
작년 아와미연맹이 몰락한 뒤 방글라데시 과도정부의 대파키스탄 관계는 개선됐고, 자마트와 파키스탄 내 지도부의 관계도 개선됐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인도·파키스탄·네팔 지도자들의 이번 방문을 의심스럽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는 파키스탄에서 온 마울라나 일리아스 구만이 있다. 그는 2005년 파키스탄의 사르고다 행정장관 시예드 타자뮬 압바스 살해 연루 혐의로 체포됐고 이듬해에는 시아파 성직자 바시르 후세인 부카리 살해 혐의로 다시 체포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방글라데시 정치가 혼탁해지는 이 시점에 주변국 주요 이슬람 지도자들이 대규모로 방글라데시에 모였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러나 자미아트-에-울레마 측은 “정치 방문이 아니라 개인적·비정치적 방문”이라고 주장했다. 파키스탄의 유력 정치인 레만 총재도 방글라데시 ‘카트메 나부와트 보호위원회’의 지도자이자 마두푸르의 영적 지도자인 마울라나 압둘 하미드의 초청을 받았다고 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방문의 실제 목적이 ‘반(反) 카디아니(아흐마디야) 운동 강화’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5일 다카 수하라와르디 공원에서는 국제 카트메 나부와트 대회가 열렸고, 주최 측은 카디아니 공동체의 ‘비이슬람’ 공식 선언을 요구하며 대규모 온·오프라인 홍보를 벌였다.
이에 대해 방글라데시 자마트 총재 우바이둘라 파루크는 “당 차원의 방문은 아니다. 마두푸르의 피르(영적 지도자) 하미드가 초대한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공항에서 영접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전 세계 어디든 디오반드 추종자가 있는 곳엔 자마트가 있다. 그러나 조직적 관계는 아니며 개인적 접촉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동남아시아 정치 전문가 알타프 파르베즈는 “정치가 불안정할 때 이런 대규모 종교 집회가 열린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파키스탄에서도 아흐마디야 문제로 폭동이 발생했고, 비이슬람 선언 이후에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991년 칼레다 지아 집권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영국 거주 연구자 루브나 페르두시 박사는 SNS에 “3개국 이슬람 지도자들의 갑작스러운 방글라데시 방문을 종교적 행사로만 받아들일 만큼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며 “남아시아의 정치 역사는 ‘종교적 정체성에 기반한 운동은 결코 홀로 오지 않으며, 중립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반복해서 증명했다. 그들은 항상 지역 권력 균형을 바꾸기 위한 전략적 부분으로서 야망을 가지고 도착한다”고 썼다. 그는 “특히 선거 전 긴장과 행정적 취약성이 누적된 시기엔 외부 이슬람 네트워크가 가장 활발해진다”며 “이번 세 나라 모두 정치적 이슬람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들이라는 점이 우연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카디아니·아흐마디야 문제는 이 지역에서 가장 폭발력이 큰 종파 갈등 이슈”라며 이번 방문과 집회는 방글라데시의 행정 능력을 정면으로 시험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방글라데시가 지역 종교 지정학의 실험장이 되어선 안 된다. 이 땅이 불길의 가장자리에 서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방글라데시는 어떤 종교적 외피를 쓴 폭력과 음모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은 다시금 극단주의의 음모를 거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성이 승리하고, 벵골의 땅이 모든 신앙을 가진 이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로 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