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젠슨 황 ‘치맥회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25-11-20     천지일보

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의 한 작은 치킨집에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한 자리에 모여 치맥을 즐긴 것이다.

세계 산업을 움직이는 대표 기업의 리더들이 편안한 표정으로 치킨을 나누며 웃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화제를 낳았다. 식사를 마친 젠슨 황이 직접 골목으로 나와 들고 있던 치킨을 시민들에게 건네자, 자리는 금세 따뜻한 환호로 가득 찼다.

거물 CEO의 ‘인간적인 얼굴’은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됐고, 이들이 떠난 후에도 치킨집은 기념촬영 행렬로 붐볐다. 평소 한산하던 골목이 순간적으로 활력을 되찾은 이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 장면엔 한국적 문화 코드의 핵심인 치맥이 있었다. ‘치맥’은 치킨의 ‘치’와 맥주의 ‘맥’을 더한 단순한 합성어다. 두 낱말의 앞부분을 결합해 의미와 발음을 모두 간결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음식의 조합이 아니라 한국 스포츠 관람 문화의 응축된 결정체로 읽힌다. 도시의 스트레스 구조, 즉흥적 즐거움에 대한 감수성, 낯선 이와 감정을 공유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공동체적 리듬까지 모두 스며 있다.

1990년대 후반 야구장에 치킨 판매대가 들어서고, 생맥주 한 잔을 들고 경기를 바라보는 장면이 익숙해지면서 관람 문화는 완전히 바뀌었다.

치맥은 경기의 승패를 넘어 관중들 사이의 감각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엮었다. 오랜 친구뿐 아니라 처음 만난 옆자리 관객에게까지 감성을 공유하게 하고, 같은 팀을 응원하는 수천명의 사람들을 하나의 거대한 축제 구조 속으로 초대했다.

미국도 야구장 먹거리 문화가 발달했지만, 정서적 결속의 방식은 다르다. 1996년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한국 선수 박찬호의 경기를 관람할 때, 필자는 생맥주와 감자칩을 들고 편안하게 야구를 즐기는 미국식 풍경을 경험한 바 있다. 핫도그와 맥주는 미국 야구장의 상징이다.

손에 들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간편함, 산업화 시대의 도시 대중문화와 함께 성장한 야구장 음식문화의 역사였다. ‘야구엔 핫도그’라는 관습이 합쳐지면서 자연스러운 문화적 짝을 이뤘다. 미국 야구장 음식문화의 핵심은 ‘가족 중심’과 함께 개인들이 즐기는 것이다.

공동 응원보다는 가족·친구 단위의 개인의 즐거움’이 우선하는 구조다. 미국 야구장 음식문화는 관중을 정서적으로 한데 묶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의 치맥은 낯선 관중끼리까지 ‘우리’라는 감정의 장벽을 허무는 촉매로 작동했다. 경기장 전체의 분위기를 통째로 끌어올리는 응집력과 지속성이 훨씬 강력했다. 개인보다 우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고유의 한국 문화가 한 몫한 것이다.

야구장 테이블 위의 치맥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관람 참여 방식 그 자체가 됐다. 치킨을 나누고,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들리면 응원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목청이 터져라 응원하는 행위보다 더 깊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된다.

여름밤 야구장에서 들리는 캔 따는 소리,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나 해외 경기 때 펼쳐지는 치맥 거리 응원까지, 치맥은 스포츠 경기의 긴장과 즐거움을 매개하는 언어이자 상징이 됐다. 한국인의 일상 속에서 치맥은 단순한 메뉴를 넘어 “함께 즐긴 시간”을 보증하는 의례적 체험으로 자리 잡았다.

치맥이 스포츠를 더 맛있게 만들었고, 스포츠는 치맥을 문화로 승화시켰다. 한국의 K-스포츠 문화가 세계로 확장되는 지금, 치맥은 그 문화적 힘을 상징하는 가장 한국적인 얼굴 중 하나다. 젠슨 황과 이재용, 정의선 두 국내 거대 기업 회장의 ‘치맥 회동’은 이를 확실히 입증한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