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행간읽기] 너희들의 일그러진 영웅
전경우 칼럼니스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7년에 발표된 이문열의 단편 소설이다. 초등학교 학급을 배경으로 우리 현대사를 우화적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이 수백만 권씩 팔리고, 웬만한 집마다 앞다퉈 문학 전집 같은 것들을 들여놓던 시절이었다. 문학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어도 소설의 제목 ‘우리들의 영웅’과 엄석대라는 이름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며 인지도 또한 높은 작품이다.
1992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반장 엄석대 역을 맡은 홍경인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홍경인은 촬영 당시 15세로, 같은 반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은 극중 인물을 연기하는 데 그만이었다.
나이도 많고 힘도 센 엄석대의 절대 권력 앞에 반 친구들은 굴복한다. 먹을 것을 갖다 바치고 당번을 정해 마실 물을 날라야 했다. 시험지 이름을 바꿔 적어 엄석대가 1등을 하도록 만들었다.
선생의 방관과 무능함이 엄석대의 횡포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학년이 바뀌고 새 담임 선생이 부임해 오면서 진실이 밝혀지고 엄석대는 도망치듯 학교를 떠난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흘러 선생의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이 다시 만나 과거 일을 회상한다.
소설과 영화의 내용이 다른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엄석대의 인생을 예측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소설 원작에서는 엄석대가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에 붙들려 가는 것으로 짐작된다. 영화에는 어른이 된 엄석대가 여전히 어린 시절 엄석대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는 친구의 대사가 등장한다.
죄짓던 놈이 또 죄를 짓고 결국 죗값을 받는 것이 권선징악적 결말이라면, 타고난 성격대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누리며 살고 있을 것이란 영화의 상상력도 공감을 얻는다. 콩 심은데 콩 나고,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엄석대의 비행을 적발하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하며 엄석대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내려치던 젊은 선생(최민식 분)의 인생 행보도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엄석대의 절대 권력을 빼앗아 아이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돌려주며 민주투사처럼 행세한 선생이 훗날 금배지를 달고 초상집에 나타난 것이다. 옛 제자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높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패기 넘치는 정의로운 선생으로 그를 기억하는 제자들을 실망시키고 만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자유당 말기,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그리고 노태우 정권 당시에도 금배지는 시쳇말로 인간도 아니었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고 오물이 튕기고 멱살을 잡고 머리채를 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동물 국회의 역사가 그렇게 이어져 왔다.
영화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참교육을 하겠다며 죽을힘을 다해 엄석대의 엉덩이에 몽둥이를 날렸던 선생이 금배지를 달고 등장한 모습을 통해 세태의 비열함을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가 나온 지 삼십 년이 더 지났는데도 달라진 게 없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며 화염병을 던지고 남의 나라 문화원을 점거하고 대사 관저에 쇠몽둥이를 들고 난입한 자들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금배지를 달고 등장한 것도 똑같다.
엄석대가 친구들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고 규칙과 질서, 예의와 배려 같은 귀하고 소중한 가치들을 훼손한 것처럼, 우리들 현실도 그러하다.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의 기준과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대혼돈의 시대다.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몸이 길면 몸을 잘라 죽이고, 침대보다 몸이 짧으면 몸을 늘려 죽이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해괴하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프로크루스테스 역시 그가 남을 죽인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