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AI의 시대, 인간의 의미를 되살리는 길

2025-11-20     천지일보
한국중소벤처포럼 김영욱 회장

한국중소벤처포럼

회장 김영욱

인공지능(AI)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과 가치 판단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금융, 의료, 교육, 행정 등 인간이 오랜 시간 일궈온 영역에서 AI의 영향력은 이미 일상적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기술 진보가 곧,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성을 위협하거나 대체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점점 더 깊어진다. 우리는 편의와 효율이라는 명분에 가려진,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근본적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약점까지 대체하고자 하는 근원적 욕망이 존재한다. AI가 오류 없는 판단과 초인적 속도로 세상을 분석하고 설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의 감정과 갈등, 불확실성을 굳이 품어야 하는가? 그러나 실상, 인간의 비합리와 흔들림, 실수에는 사회적 연대와 책임, 윤리적 상상이라는 본질적 가치가 내재한다.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는 ‘함께 살아가는 법’에서, AI의 완벽함은 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AI가 정치, 공공 영역의 정책 결정에 깊숙이 진입하는 오늘, ‘리더십’의 의미 역시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인간 정치의 서사에는 이성과 감정, 도덕적 긴장과 상호 공감이 중첩돼 있다. 만약 효율만으로 국정과 사회운영을 논한다면, 인간의 꿈과 좌절 그리고 사회적 책임까지 잃게 된다. AI가 제시하는 간명한 해답이 더는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까닭이다.

AI 윤리 논의의 핵심은 결국 ‘정렬(Alignment)’ 문제다. 어떤 기술도 인간의 자기 성찰과 합의,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윤리적 감수성 없이는 안전할 수 없다. 세계 각국이 AI 윤리 가이드라인과 규범 제정에 나서고 있지만, ‘선과 악’이라는 가치의 기준 그 자체가 나라마다, 집단마다 다르다는 현실적 한계는 분명하다. 기술적 통제장치를 아무리 복잡하게 설계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라는 담론적 과정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안전장치는 완성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기계를 인간답게 만들 것인가, 인간이 AI를 닮아갈 것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AI와 인간이 공존, 혹은 공진화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닌 ‘공동의 윤리적 상상력’이다. 인간의 실수와 약점,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리고 타자를 향한 연대와 공감이야말로 AI 시대를 지탱할 진정한 힘이다.

정부와 사회, 기업 모두가 기술적 편익에만 치우친 정책 및 제도 설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경제적 효율과 혁신의 논리를 앞세워 왔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다움의 본질을 지키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미래 세대에게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물려주기 위한 교육, 제도, 시민 담론의 혁신이 절실하다. 인간 존엄과 공동체 윤리가 우선될 때, AI 역시 그 기반 위에서만 우리의 삶에 이롭고 안전한 동반자로 남을 수 있다.

AI의 완벽함이 인간 사회의 서사, 연대, 공감, 행동의 윤리를 대체하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한다. 인간의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고 끊임없이 붙들며, 불완전성의 용기를 존중하는 사회야말로 기술 시대의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