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생의 교단일기] 학교폭력 이력, 이제 졸업해도 남는다

2025-11-19     천지일보

최병용 칼럼니스트

올해 대학 입시에서 학교폭력 전력이 남은 학생들이 탈락하는 사례가 잇따르며 학폭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이 있다.

개정안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기록 보존 기간을 크게 늘려, 예전처럼 졸업과 함께 생활기록부에서 삭제하지 않고, 최대 4년까지 남기도록 했다.

이전에는 가해 학생이 졸업하면 심의위원회 판단에 따라 학폭 관련 조치를 생활기록부에서 삭제하는 사례가 많았다. 시행령이 개정된 후에는 졸업해도 일정 기간 기록이 유지되며, 대학 입시까지 이어진다.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라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책임 기준이 한층 강화된 셈이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는 1호부터 9호까지 있다. 1호 서면사과, 2호 접촉 및 보복 금지, 3호 교내봉사, 4호 사회봉사, 5호 특별교육, 6호 출석정지, 7호 학교 교체, 8호 전학, 9호 퇴학이다. 이 가운데 1~3호는 비교적 경미한 수준으로 분류돼 일정 요건을 채우면 졸업 시 삭제가 가능하다.

반면 4호 이상의 조치를 받으면 졸업 이후에도 일정 기간 생활기록부에 남는다. 특히 6호 이상은 보존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었고, 졸업 직전 심의를 통해 예외적으로 기록을 지우던 규정도 제한했다. 8호 전학은 예외 없이 졸업 후 4년, 9호 퇴학은 평생 기록으로 남도록 규정해 가해자의 사회적 책임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했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단순한 기록 기간 연장이 아니다. 과거 제도는 가해 학생의 인권 보호를 앞세우면서 피해자가 겪은 상처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하는 구조에 가까웠다. 졸업만 하면 기록이 지워진다는 인식은 진지한 반성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는 길을 열어줬다.

새 제도는 가해자 중심의 관용에서 피해자 중심의 정의로 시선을 옮긴 상징적인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피해자의 고통이 쉽게 사라지지 않듯, 가해자도 일정 기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메시지다.

일각에서는 ‘낙인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청소년기에 저지른 잘못을 오래 남기면 성장 가능성까지 가로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타인의 인격과 존엄을 짓밟는 폭력이다. 사회가 이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기준이 분명할 때 예방 효과도 제대로 나타난다.

제도 시행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의 경각심이 확실히 커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입 탈락 사례가 알려지면서 학폭 기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졌고,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에도 신중해지려는 분위기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학교폭력 조치를 단순한 징계 수준에서 끌어올려,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안전망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학폭 이력을 생활기록부에 남기는 건 가해자를 평생 떼어낼 수 없는 낙인으로 몰아붙이려는 뜻이 아니다. 진심 어린 사과와 성찰, 관계 회복을 전제로 사회와 다시 신뢰를 쌓을 기회를 열어 두려는 시도다. 다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치유와 존엄 회복이 언제나 우선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학교 안에만 머무르는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의 신뢰와 연대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엄정한 기록 관리와 더불어 가정·학교·지역 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예방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졸업 후에도 남는 학폭 이력은 학생들에게 경고의 메시지이자 사회적 약속이다.

학교와 가정, 사회가 이 제도의 취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가 ‘존중과 배려의 문화’로 한 단계 성숙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학폭 이력 보존 강화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모두에게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