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 개최

2025-11-19     백은영 기자

제5회 한글실험프로젝트… 도구와 글자 탐구 전시

연필에서 AI까지… 23팀 참여한 실험적 작품 공개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강정원)은 한글실험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여정으로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전시를 개최한다. 한글과 디자인을 주제로 그 가능성을 확장해 온 한글실험프로젝트의 이번 전시는 ‘쓰기’와 ‘도구’가 만드는 글자의 질감을 탐구하는 실험적 시도이며 23팀의 작가, 디자이너와 협업해 시각‧공예‧제품‧공간‧미디어아트‧설치 등의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는 11월 19일부터 2026년 3월 22일까지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진행된다. (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천지일보 2025.11.19.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국립한글박물관이 추진하는 제5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가 19일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문을 열었다.

손글씨에서 디지털 기술, 더 나아가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변화해 온 ‘쓰기’의 본질을 다시 묻는 자리로 전시는 2026년 3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글자를 만들어내는 행위와 도구의 관계를 중심에 놓는다. 기록의 매체가 급격히 전환되는 시대, 인간의 쓰기는 어떤 감각을 유지해 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향할 것인가.

박물관은 이러한 질문을 토대로 시각·공예·제품·공간·미디어아트·설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23팀의 작가·디자이너와 협업해 신작을 선보였다.

‘흔적 사전(김영글, 2025)’. 손으로 문자를 다루던 시대가 저물고 난 뒤, 미래의 독자들이 마주하게 될 과거의 기록이다. 글쓰기가 남기는 다양한 물성의 흔적이 사라진 상황을 전제로 쓰기의 행위와 쓰기 도구들이 지녔던 의미를 돌아보고자 했다. (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천지일보 2025.11.19.

전시장 도입부에는 김초엽, 김영글, 김성우, 전병근 등 네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집필한 텍스트를 설치 작품과 함께 배치했다. 책의 속성을 물성화한 구조물에 글을 담아낸 이 작업은 디지털 환경에서 비물질화되어가는 텍스트의 존재를 다시 현실에 불러내는 시도로 읽힌다.

쓰기를 둘러싼 물성과 감각을 조명한 작업들도 눈길을 끈다. 일기와 필사, 창작 과정을 기록한 작품들은 ‘쓰는 도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연필을 사고의 연장으로 해석한 실험 도구 17종을 선보이는 작품은 ‘생각-도구-행위’로 이어지는 쓰기의 경로를 새롭게 제시한다.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기획향(조영각, 혼합매체 2025)’. 로봇이 인공지능에게 명령하는 장면을 통해 ‘수행’의 개념을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서 재정의한다. 로봇은 붓으로 키보드와 패드를 눌러 생성형 인공지능에 움직임을 입력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문자도를 닮은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만들어낸다. 한글과 첨단 기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창작자의 정체성과 미래 창작 환경의 일부분을 보여준다. ⓒ천지일보 2025.11.19.

인공지능 시대의 쓰기를 다룬 섹션에서는 AI를 협업자 또는 창작 도구로 관찰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구축하는 기록의 미래를 탐색한다. 기술의 개입이 글쓰기의 방식과 감각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시장에는 누구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설명 패널과 시각장애인과 저시력자를 위한 묵점자책이 마련돼 접근성을 높였다.

전시기간 동안 관람 후기를 바탕으로 한 손글씨 폰트 제작 이벤트, 작가와의 대화, 큐레이터 전시 안내 등 연계 프로그램도 예정돼 있다.

‘명언곡(정문기, 2025)’. 쓰기의 행위를 소리에 담았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쓰는 동안 매 획을 완전히 동일하게 긋지 못하는 것을 ‘실패’로 보면서도, 실패에 대한 가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문장들을 모아 한글 쓰기 교본을 만들고 그 문장을 따라 쓰며 발생한 소리를 채집해 재가공했다. 이러한 실패를 연속하는 쓰기 연습을 통해 문장을 완성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제시한다. (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천지일보 2025.11.19.

2016년 출발한 한글실험프로젝트는 문자의 본질과 쓰기의 가치, 나아가 행위와 도구에 대한 탐구로 범위를 확장해 왔다.

19일 진행된 기획특별전 전시설명회에서 강정원 관장은 “문자가 탄생한  이후 ‘쓰기’라는 행위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 지식의 축적을 통해 문명을 발전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이 쓰기 과정에서 붓이나 연적, 벼루, 연필, 키보드와 같은 여러 가지 도구들이 만들어지는데  이런 도구들이 어떻게 예술 작품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또 쓰기와 관련된 인간의 행위와 문자와의 관계성을 살펴보자는 의미로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으로 직접 감각하는 것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오늘날, 이번 전시를 통해 글자와 도구가 만들어내는 질감을 감각하며 글자 속에 잠시 머무는 사유의 순간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물관은 이번 서울 전시에 이어 내년 지역 순회전으로 한글문화 향유 기회를 넓혀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