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헌법존중TF’… 내란청산 명분 뒤 사찰논란

사실상 휴대폰 강제 제출 요구에 법조계 “영장주의 훼손” 비판 野 “북한에서 볼 법한 불법사찰” 김종인 “이재명 성취 깎아먹어”

2025-11-18     원민음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뒷줄 가운데)이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5.11.11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가담 공무원을 가려내겠다며 추진하는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를 둘러싸고 위헌 논란과 정치적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내란의 완전한 종식’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하지만 광범위한 조사 범위와 공직자 휴대전화 포렌식 방침이 공개되면서 공직사회에선 ‘사찰’ 우려가, 법조계에선 헌법상 기본권 침해와 영장주의 위반이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야권은 “중증 내로남불”을 외치며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파장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무총리실은 지난 11일 발표한 ‘헌법존중 TF 추진계획’에서 전체 49개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따른 내란 행위에 가담한 공직자를 찾아내겠다며, 공직자 개인 휴대전화의 ‘자발적 제출’을 유도하고 협조하지 않을 경우 대기 발령·직위해제 후 수사 의뢰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형식상 ‘임의제출’이지만, 국가권력이 인사상 불이익을 앞세워 사실상 강제 제출을 요구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압수수색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논란의 핵심은 수사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이 법원 영장 없이 공무원 휴대전화를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하는 것이 헌법상 기본권, 특히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느냐 여부다. 국무총리실은 “인터뷰(심문), 서면조사, 디지털 포렌식 등 종합적 조사 실시”라는 기존 지침 문구에 비판 여론이 일자, 뒤늦게 “서면 및 디지털 장비 등에 대한 종합적 조사 실시”로 표현을 고쳤지만, 실질은 변한 게 없다는 비판이 계속된다.

법조계에선 오래전부터 공무원 휴대전화 제출 강요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0년 논문 ‘감찰의 한계에 관한 소고’에서 자기부죄거부 특권, 즉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헌법상 권리를 근거로, 감찰 과정에서 공무원에게 개인 휴대폰 제출을 명령하고 비협조 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위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공무원들 휴대전화를 (동의하에) 임의제출 받는다고 하지만 현실은 강제제출에 가깝다”며 “공무원들을 잠재적인 범죄 혐의자로 보고, 협조하지 않으면 대기 발령까지도 하겠다는 것인데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고,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과잉금지원칙상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충족돼야 하는데 헌법존중TF는 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김민석 총리(사진)는 14일 기아 화성공장 준공식에서 AI 자율주행과 친환경차 확대를 포함한 미래차 산업 지원 방안을 밝혔다. (제공: 국무조정실)

여권 일각에선 계엄 사태에 동조하거나 침묵한 공무원을 걸러내지 않고서는 “진정한 국민주권 정부”가 출범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승진한 공무원들이 여전히 자리를 꿰차고 있다”며 “계엄에 동조한 공무원들을 현 위치에 그대로 두는 것은 국민 여론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아이러니도 논란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헌법존중TF를 두고 “당연한 일”이라고 엄호에 나선 민주당은 과거 윤석열 정부 당시 감사원의 PC·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조사에 대해서는 “위헌적 사찰”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2020년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감사 과정에서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개인에 대해 압수물을, PC나 휴대폰을 감사원이 영장도 없이 디지털 포렌식한다는 것은 굉장한 문제”라며 “헌법상 영장주의에 비춰 맞는 것인지 검토해달라”고 지적했다. 2023년 코로나19 백신 수급 감사 당시에도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감사원이 공무원들의 심리적 위축을 이용해 “거의 반강제적으로 개인 메시지·휴대폰을 포렌식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야권은 이 같은 과거 발언을 정조준하며 ‘내로남불’ 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이던 2016년 “절대 전화기를 뺏기면 안 된다”고 발언한 영상을 재생하며 공직자 휴대전화 제출 요구를 “북한에서 목도할 법한 불법적 공무원 사찰”에 비유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최고위에서 “이 대통령이 공직사회를 ‘네 편, 내 편’으로 가르기 위해 공직자의 휴대전화까지 다 뒤지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천지일보 2025.11.17.

보수 진영의 대표적 원로 정치인인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한층 더 냉정한 시각을 내놨다. 김 전 위원장은 전날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5개월 동안 소통과 외교 등에서 “나름 열심히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헌법존중TF에 대해서는 “아주 유치한 발상”이라고 직격했다. 그는 “공무원 중 계엄에 찬동하고 동조한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그 몇 사람을 골라내려고 TF를 구성해 핸드폰을 포렌식한다는 것은 아주 유치한 발상이다.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의 그동안 성취를 깎아 먹지 않았나”라고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금이 이재명 정부가 정권 교체 직후의 격랑을 정리하고, 사회 통합과 포용의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 사회 전반을 잠재적 가담자로 간주해 불안과 불신을 키우는 방식은 정부 효율을 떨어뜨리고 향후 국정 운영에도 부담을 안길 것이라는 우려다.

헌법존중TF는 감찰·조사 기능을 담당하는 헌법기관인 감사원과 달리 설치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 부동산 투기 근절과 공직기강 확립을 명분으로 대통령 직속 ‘청와대 특명사정반’이 운영됐을 때도, 야권이었던 통일민주당은 “법에도 없는 권능”을 행사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통일민주당 김정길 의원은 1990년 본회의에서 “정부는 대통령비서실 일부에 법에도 없는 권능을 부여함으로써 특명사정반이라는 것을 만들어 일종의 인기전술로 대응하고 있다”며 “도대체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당시 정부는 헌법 제66조의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었지만, 김 의원은 “이런 것이 법적 근거가 된다고 국회에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비슷한 논쟁이 ‘헌법존중TF’를 둘러싸고 재연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