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사설] 원칙보다 정치가 앞선 대장동 항소 포기 대응 ‘유감’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을 둘러싼 검찰 내부의 집단적 문제 제기와 이에 대한 정부의 강경 반응은,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정부 스스로의 기준을 흔드는 모습이다.
지난 10일 전국 지방검찰청 검사장 18명과 지청장 8명은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며 당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명확한 경위를 밝힐 것을 요청했다.
담당 수뇌부가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서도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외부 개입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내부 간부들이 절차적 정당성과 공공성을 확인하려 한 것은 조직의 기본적 의무에 가깝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집단 항명’으로 규정하고, 검사장들을 평검사로 전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실상 강등에 준하는 조치로, 검찰 조직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신호다.
공직사회에서 지휘부의 의사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가 곧바로 법 위반으로 연결된다면, 견제와 감시 기능은 사실상 마비될 수밖에 없다. 특
히 이번 사안은 천지일보 여론조사에서도 항소 포기 배경에 대통령실 의중이 작용했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긴 만큼, 투명성을 요구할 필요성이 더욱 큰 사안이었다. 이 같은 대응은 얼마 전 군사법원에서 채 상병 사건 관련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무죄 판단을 받고 장군으로 진급한 사례와 선명하게 비교된다.
당시 군사법원은 이첩 보류 명령이 정당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부당한 지시의 문제를 제기한 박 전 단장의 판단을 사실상 정당했다고 평가했다. 군에서는 ‘부당한 명령에 대한 저항’이 원칙 준수로 인정됐는데, 검찰에서는 ‘설명 요구’가 곧바로 항명으로 몰리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가 둘 사이에 전혀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모습은, 문제 제기의 성격이 아니라 문제 제기가 향한 방향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대장동 항소 포기 의혹이 대통령실을 향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이를 조기에 봉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강등성 조치나 징계 프레임으로 내부 비판을 차단하려 한다면 이는 불신과 의혹을 더 키울 뿐이다.
공직사회의 기본은 동일한 기준이다. 부당하거나 설명되지 않은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조직이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군에서는 문제 제기가 정당성을 인정받았고, 검찰에서는 같은 행위가 공무원법 위반으로 몰린다면, 이는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는 신호가 된다.
정부가 법치와 원칙을 말하려면 가장 먼저 내부에서 제기되는 합리적 의문을 억압하는 태도부터 돌아봐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경 대응이 아니라, 항소 포기 결정의 경위와 배경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밝히는 일이다. 법치는 선택적 기준이 아니다. 이를 스스로 훼손한다면 국가 조직 전체의 신뢰만 무너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