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사설] 한미 통상 협상, 경제·안보 대전환의 분수령

2025-11-17     천지일보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통상 협상 팩트시트는 한국 경제와 안보의 중장기적 방향을 가늠할 중요한 계기다.

경주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통상·안보·원전 협력을 포괄하는 협력 틀을 제시했으며 특히 협정 분야에서 약 15% 수준의 조정이 이뤄지면서 실질적 진전을 보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무역 조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전략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분수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큰 진전은 핵추진 잠수함(SSN) 도입과 핵 재처리 기술 승인에 대한 합의다. 이는 한국이 수십년간 미국에 요청해 온 대표적 숙원 사업이었다. 핵추진 잠수함은 사실상 무제한 잠항이 가능해 중국·북한과의 비대칭 전력 경쟁에서 대등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 안보 체계는 이번 합의를 통해 기존의 방어적 전략에서 벗어나 보다 능동적·전략적 대응이 가능한 체계로 전환하게 됐다.

핵 재처리 시설 승인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원전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시설은 사실상 포화 상태에 다다라 정책적·기술적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핵 재처리 시설을 도입함으로써 저장 부담을 줄이고, 사용 후 핵연료를 새로운 자원으로 순환시키는 체제가 구축된다.

이는 일본이 이미 시행 중인 방식이며 한국이 해당 기술을 보유하게 되면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은 일본 수준의 경쟁력과 확장성을 갖추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원전 수출 확대, 에너지 자립도 제고, 핵심 기술 내재화 등 다층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번 협상은 구조적 변화의 출발점이다. 미국에 2천억 달러 한국 기업 직접 투자와 1500억 달러 조선·인프라 투자다. 이에 따라 한국은 매년 200억 달러 수준의 직접 투자를 미국에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미국의 제조업 부흥, 원자력·반도체·인프라 구축 등 핵심 산업 강화에 활용될 전망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한국의 대미투자가 ‘미국만 좋은 투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실질적 이득으로 돌아오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한국 외환보유액의 절반이 넘는 2000억 달러가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투자되는 만큼 한국 기업의 시장 접근성 확대, 기술 협력 강화, 양방향 산업 생태계 구축 등 구체적 이익 확보 전략이 필수적이다.

단순한 해외 투자로 끝나서는 안 되며,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듯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정책 개선과 규제 개혁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일자리의 90%를 기업이 만드는 만큼 기업 투자와 신산업 육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확대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핵추진 잠수함, 핵 재처리 기술, 원전 협력, 대규모 양국 투자 계획을 기반으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략적 조율과 정책적 실행력이다. 한국과 미국이 장기적으로 상생하는 구조를 설계할 때 비로소 이번 협상은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