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칼럼] 황소개구리와 외래종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의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이라는 글이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다.
언어 비문학 영역의 지문에 자연과학자의 글이 텍스트가 된 것이 다소 이례적이었지만 토종 청개구리와 외래종 황소개구리의 관계를 통해 외래어가 우리말의 자리를 위협하는 문화적 현상을 비유적으로 연결한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토종 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종의 상징이었던 황소개구리는 요즘 어떠할까? 한때 황소개구리가 우리 생태계를 초토화시킨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장세를 멈추며 정체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전히 토종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양상은 다소 달라진 상황이다. 현재 황소개구리는 어느 정도 토착 생태계에 적응한 단계로 토착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안정적 침입종’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평야·하천·저수지·농수로 등에서 야생 번식 집단이 유지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30년 이상 세대 교체가 지속되고 있다. 즉 정착이 완료된 셈이다.
하지만 완전히 토착화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토착화, 즉 ‘자연화된 종’은 자급자족 개체군을 형성했지만 지역 생태계로 확산하지 않으며 충분히 오래 서식했고 경제적이나 생태학적 해를 끼치지 않는 특징을 가져야 한다.
반면 ‘정착 침입종’은 도입된 지역에서 생태학적, 경제적 피해를 야기하며 토착화된 종으로 확산해 토종과 경쟁하는 특징을 보인다. 황소개구리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 무한정 확장되지는 않고 최근에는 일부 지역에서 자연적 감소를 통한 개체수 조절이 관찰되기도 했다. 원인은 수달, 왜가리, 뱀과 같은 천적의 등장 그리고 경쟁압과 서식지의 건조화 등이 주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황소개구리 못지 않게 악명을 날렸던 배스와 블루길 또한 황소개구리와 유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최근 연구자료를 보면 배스와 블루길 역시 여전히 확산 가능성과 생태적 위협이 남아 있지만 일부 지역에선 안정화 조짐이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황소개구리도 그렇지만 배스와 블루길의 확산은 인간의 인위적인 자연 개입이 주원인이다. 인위적으로 들여온 어종이 자연에 방류되거나 방치돼 급속히 퍼진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뒤늦게 갖은 방법을 동원해 퇴치하려 노력하지만 효과는 없으며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흥미로운 점은 요녀석들이 모두 미국에서 도입된 것인데 반해 미국에는 ‘아시아 잉어(Asian carp)’라는 녀석들이 미국 하천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하천인 미시시피 강 유역에 정착한 이 아시아 잉어는 1970년대에 주로 양식장에서 플랑크톤 조절을 위해 도입한 물고기였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가 탈출하면서 현재는 강 하류는 물론이고, 강 상류 수역까지도 확산됐다고 한다. 이들 역시 이미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근본적 제거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들의 ‘침입’과 ‘정착’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생물종은 복잡하고 다양한 공진화(공동진화) 과정을 통해 생존한다. ‘공진화(coevolution)’는 두 종 이상이 서로에게 선택압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진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런데 침입 외래종은 이 공진화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파괴한다. 생태학자 문태영 교수는 호주 대륙에 정착한 ‘낙타’의 사례를 통해 ‘공진화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현재 호주에는 100만 마리 이상의 야생화된 ‘낙타’가 서식하고 있으며, 이는 원산지인 중동 전체의 ‘낙타’ 개체수보다 많다고 한다.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수많은 ‘낙타’들이 야생으로 버려지면서 문제가 시작됐는데, 수천 년간 사막생태계와 함께 진화한 중동에서는 낙타가 생태계의 필수적인 구성원이었지만, 진화적 역사를 공유하지 않은 호주에서는 생태계 균형을 파괴하는 침입자라는 것이다.
황소개구리도 그렇고 낙타도 그렇고 이들 외래종 문제는 인간이 함부로 자연에 개입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다시금 생각케 한다.
그렇다고 이들 외래종을 필요에 의해 도입해 놓고선 피해가 확산되자 무조건 퇴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유야 어쨌든 그들도 생명이기 때문이다.
결국 완전한 박멸보다는 지속가능한 관리 방안을 찾는 것이 현실적 해법이라고 문 교수는 말한다. 인류와 다른 생물 종간의 공존윤리도 있고, 토종 생태계 보호라는 목적을 견지하면서도, 이미 정착한 생물종과의 공존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과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