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 침투전’으로 선회한 러… 포크로우스크 붕괴 위기

우크라 포크로우스크 운명은 인해전술에서 전술 바꾼 러군 소규모 침투조로 포위 전략 우크라군 소모 상태 전선 좌우

2025-11-17     이솜 기자
지난 10일 공개된 SNS 영상 중 한 장면으로, 오토바이를 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포크로우스크의 교전 지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우크라이나 동부 포크로우스크를 둘러싼 전투 양상이 지난 바흐무트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러시아군은 드론의 대량 확산으로 기갑 장비 운용이 어려워지자 중장비 대신 모페드(모터와 페달을 갖춘 자전거의 일종)나 오토바이를 이용한 소규모 침투 전술을 채택하며 전술적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CNN은 전했다.

한때 비교적 조용한 지역의 주요 군수·물류 허브인 포크로우스크는 2024년 초 동쪽의 아우디이우카 돌파 이후 러시아군이 거의 2년 동안 천천히 진격해 온 곳이다.

이 지역이 함락된다면 이는 2023년 5월 바흐무트 이후 러시아의 최대 도시 점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발판으로 북쪽의 콘스탄트니노브카와 크라마토르스크 방면으로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 우크라이나의 소모된 병력 상황과 후방 방어선 준비 상태가 향후 전장의 속도를 결정지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흐무트 전투와 상반된 전략

포크로우스크 공세가 절정에 이른 지금, 포병·드론·보급 압박과 함께 주목되는 부분은 러시아군의 전술 변화다. CNN에 따르면 짙은 안개 속에서 오토바이·모페드·버기 같은 경량 차량을 이용해 포크로우스크로 향하는 러시아 병력 행렬을 볼 수 있다. 일부는 낡은 트럭 뒤에 서 있고 일부 차량에는 기묘한 철제 구조물까지 설치돼 있다.

이전 바흐무트 전투 때 러시아가 사용한 전술은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고기 분쇄기(meat grinder)’라고 불렀던 인해전술 방식이었다. 러시아군은 병력을 파도처럼 들판으로 밀어 넣어 우크라이나군의 포진지를 드러내려 했고 후퇴 시 상관에게 사살될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당시 CNN에 “매일 러시아군 수십명을 사살했다”고 말했다. 결국 압도적인 병력 투입으로 러시아가 도시를 점령했지만 대가가 막대했다.

바흐무트와 마찬가지로 포크로우스크도 대부분 폐허가 됐고 전략적 중요성은 크게 감소했지만 우크라이나 저항의 상징이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지역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며 상황이 점점 절망적으로 변하고 있음에도 우크라이나군이 계속 버티려 하는 이유다.

그러나 포크로우스크에서는 전술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쟁연구소(ISW)의 메이슨 클라크는 “이제 러시아군은 가능한 많은 인원이 우크라이나 진지 가까이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지 죽으러 보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129여단 병사는 “도시 지역에서 예전에는 5~7명씩 움직였지만 지금은 최대 3명”이라며 소규모 침투조가 드론 정찰 화면에서 추적을 훨씬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피키 블라인더스’ 드론부대의 전투원도 “러시아군은 보통 3명 단위로 움직이며 두 명이 파괴돼도 한 명이 도시에 도달해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으로 움직인다. 하루에 이런 그룹이 100개씩 시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의 주된 이유는 드론의 대량 확산이다. 최근 기술 발전으로 훨씬 더 많은 드론을 훨씬 더 넓은 거리에 배치할 수 있게 됐고 이는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전선 양쪽의 ‘살상 구역’을 효과적으로 확장해 전장에서의 진격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군 사상자가 2022년 침공 이후 110만명을 넘으며 그 중 3분의 1이 올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클라크는 “도시 지형에 대한 고의적인 소모적이고 직접적인 정면 공격이었던 바흐무트와는 다르다. (포크로우스크에서는) 도시 구역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보다는 우크라이나군을 포위하는 것이 작전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사진은 스칼라(425 독립 공격 연대)가 제공한 영상에서 추출한 것으로 지난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프로보스트에서 촬영한 드론 영상. (출처: 뉴시스)

◆“포크로우스크 함락, 전선 큰 영향 없어”

러시아군은 포크로우스크를 완전히 포위하지는 못했지만 우크라이나 보급선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포크로우스크와 인근 디미트로프에서 싸우는 한 우크라이나 의무병은 CNN에 “후송 차량이 도시에서 최소 10~15㎞ 밖까지만 접근할 수 있으며, 드론 때문에 그마저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상자는 (의무) 안정화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경상자도 도착할 때쯤이면 중상이 된다”며 “2주 동안 빼내지 못한 중상자도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포크로우스크를 얼마나 더 오래 지킬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월 말 러시아군이 포크로우스크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보다 8대 1로 수적 우위에 있다고 밝혔다.

16일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포크로우스크 함락 후 러시아의 다음 움직임에 대해 핀란드 기반 블랙 버드 그룹 분석가 파시 파로이넨은 “러시아군은 북쪽 도브로필리아에 진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쪽 메조바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지만 초점은 계속 도네츠크주가 될 것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또한 파로이넨은 러시아가 포크로우스크 북동쪽에서 우크라이나군이 8월 반격으로 되찾은 지역을 다시 점령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스트리아 군사 전문가 톰 쿠퍼는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러시아가 포크로우스크를 기반으로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의 파블로그라드 방향으로 서진하며 크라마토르스크를 차단하려 하고, 동시에 북쪽 이지움 방향에서도 내려오려 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포크로우스크는 러시아가 계속 진격하기 위한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제 문제는 서쪽으로 움직일지, 북쪽으로 움직일지다”라고 설명했다.

파로이넨은 포크로우스크 탈환을 위해 버틸 수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상태가 앞으로 전황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라운드형 돌출부를 방어하는 데는 선형 전선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포크로우스크 함락이 나머지 전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가 이미 병참 중심지를 더 후방 깊숙한 곳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남은 질문은 우크라이나가 이 지역의 함락 이후에도 러시아의 진격 속도를 늦출 만큼 충분한 전투력을 보유할 수 있을지 여부이다.

포크로우스크가 철도·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요지라는 점도 전략적 중요성을 키운다. M30 고속도로는 서쪽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도시들을 잇고 북쪽 콘스탄트니노브카 같은 우크라이나 마지막 거점과 연결된다. 파로이넨은 러시아가 포크로우스크 점령 후 콘스탄트니노브카 포위를 강화할 것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