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논단] 급속도로 가속화되는 북한 권력의 세대 교체

2025-11-16     천지일보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세월이 무상하다고 북한 권력도 세월의 흐름속에 구세대가 사라지고 신세대가 등장하는 순환기를 겪고 있다. 다만 그 모습이 세습형이라는 사실이 구차하고 처량하다. 북한의 ‘혁명 1세대’가 역사 속으로 퇴장하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체제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계속 나오고 있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과도 직접 활동했던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최근 사망한 가운데, 김기남·최영림 등 1세대 지도부가 이미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데 이어 자연 감소기로 접어들며 사실상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평가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이 갑자기 병사하면서 3대 세습으로 등장한 김정은 집권 초기만 해도 원로와 신세대가 공존하는 과도기 구조가 뚜렷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2012년 7월 김일성 18주기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 현장에서 연출됐다.

당시 공개된 사진에서 김정은은 중앙에 서고, 양옆으로 김영남·최영림·김기남 등이 자리하며 후계 체제의 상징적 균형을 이뤘다. 김일성의 유일한 딸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와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도 전면에 등장해 ‘혁명전통과 새 세대’가 나란히 서는 구도가 인상적이었다.

이후 2012~2013년 현지 지도에서도 이 같은 혼재가 반복됐다. 김정은이 평양 대성산·양강도 경제 현장과 군부대 식당 등을 찾을 때마다 김영남·김기남 등 원로가 수행했고, 최룡해·김경희·장성택과 같은 전환기 엘리트가 뒤를 따랐다.

혁명 1세대의 존재는 일종의 ‘권위·의례 안전판’이자, ‘세대교체 가이드’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데 2013년 12월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에서 기둥 역할을 했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숙청 처형되면서 권력 지형은 급격하게 변하였다. 중국식 개혁 개방으로 기울리라던 기대감도 동시에 사라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선군정치를 깨끗하게 정리하면서 다시 당 중심의 리더십을 수립하였고 심지어 최용해 상임위원장이 권력 2인자에서 물러나고 내각 총리가 그 자리에 올라서는 희한한 권력 구도를 창출했다.

다시 최근 북한 매체가 공개하는 장면은 완전히 다르다. 2023년 전술핵 운용부대 시찰, 2024년 초 초대형 방사포(KN-25) 시험 지도, 군수공업 관련 회의 등 주요 군사·정책 일정을 보면 수행 라인이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 김여정 부부장, 리병철 비서, 박정근 군수공업부장 등 ‘김정은 세대’로만 채워져 있다. 공개된 사진과 영상에서 원로급 인물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의례적 균형장치가 사라지고 실질 권력이 더욱 집중되는 양상이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사회주의 혁명 1세대의 퇴장이 김정은 권위 강화에 유리한 배경이 되고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북한 권력 구조에서 혁명 1세대는 상징적 존재였지만, 동시에 체제 운영에 있어 일정한 견제와 안정 역할도 수행해 왔다. 그들은 권력강화에서 일종의 과도기적인 완충 역할을 수행하고 이제 일선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대교체가 완결되면서 김정은이 독자적 통치 스타일과 정책 방향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는 해석이다. 특히 북한이 올해 9차 노동당 대회를 앞둔 만큼, 김정은이 세대교체 완성을 선언하고 국정 기조를 재정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외교·군사 노선의 장기 전략화, 간부층 충성 체계 강화, 경제·과학기술 인재 라인 재편 등이 주요 키워드로 꼽힌다.

한 대북 소식통은 “혁명 1세대가 자연스럽게 퇴장하면서 김정은 세대 중심의 권력 구조가 명확해졌다”며 “당 대회를 계기로 체제 안정과 통제 강화 메시지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80주년을 기념하는 평양 5.1경기장 대집단체조에서 북한 노동당은 선대 수령들의 ‘김’ 자도 붙이지 않고 사진 1장도 담지 않아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가히 북한판 문화대혁명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이제 김정은이 선대와 단절하고 자기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의 선언이었다. 경제노선에서도 김정은식 시장사회주의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주의 혁명기를 경험하지 않은 평양의 신세대 리더들이 과연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제대로 이끌고 갈지 걱정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