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정부 갈등관리 수준의 민낯… 종묘 일대 보존 vs 서울시 도심 재생

2025-11-13     천지일보

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사람이 모인 곳엔 갈등이 생긴다. 이는 개인이나 집단 간의 성격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와 자원 분배의 본질적 차이와 다름에서도 비롯된다. 자원은 언제나 유한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이나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예산, 한정된 시간 안에서 어떤 것을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다르면 갈등은 불가피하다. 

소위 ‘종묘대전’이라고 하는 종묘 일대 재개발 논쟁도 다르지 않다. 한쪽은 도심의 노후 공간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경관을 보호해야 한다고 한다. 공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목적은 다르지 않지만, 우선순위의 차이로 인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갈등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해 야기된 충돌 현상은 오히려 건강한 사회의 증표다. 대립한 당사자 간의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충돌한 사회적 에너지를 갈등관리 차원에서 컨트롤하기 위한 핵심적 두 가지 요소는 ‘기준’과 ‘권위’다. 

기준은 판단의 원칙이 되고, 권위는 그 기준을 해석해 판단할 주체를 말한다. 이 두 가지가 명확할 때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조정과 타협을 통해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서울시는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을 재개발하려 한다. 수십년간 방치돼 슬럼화된 도심 한가운데를 회복시키려는 목적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존 55m였던 건물 높이를 최대 145m까지 상향하고, 이 일대를 ‘녹지축’ 중심의 재생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중앙정부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경관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직접 종묘를 방문해 사업 재검토를 강하게 요청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새로운 입법을 통해 서울시의 사업을 무산시키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대법원은 종묘 일대 재개발과 관련된 서울시의 최근 개정된 조례가 적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문화유산법은 원칙적으로 문화재 경계로부터 500m 이내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하되, 그 밖의 지역이라 해도 문화유산에 실질적 영향이 있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돼 있다. 

서울시가 조례를 통해 보존지역 밖에서의 개발규제를 완화한 것은 상위법에 반하지 않으며, 문화유산 보호는 기존 법률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사업 자체를 막기 위한 새로운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준과 권위, 즉 갈등관리의 핵심적 요소를 부정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법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총의를 모아 세운 기준이고, 대법원은 그 법의 최종 해석권을 가진 권위를 상징한다. 그 기준과 권위가 모두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는데, 이제 와서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법을 바꾸겠다’라고 한다면, 공동체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더욱이 김민석 총리는 과거 청계천 복원 사업을 반대한 이력이 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그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청계천 복원을 내세운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당시 김 후보는 교통 혼잡 가중 및 도시 혼란 우려, 경제적 비용 발생 그리고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복원에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청계천 복원 사업은 서울의 도시재생 모델이 됐고, 전 세계에 ‘K-도시계획’의 대표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청계천 복원이 없었다면, 종로에서 성동으로 이어지는 일대는 여전히 어둡고 낙후된 공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과거가 있음에도 김 총리는 이번 종묘 일대 재개발에 대해 “세계유산 지위가 해제될 수 있다”며 다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물론 개발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문화유산 보호는 매우 중요한 국가적 책무다. 

하지만 기준과 권위에 대한 존중 없이 감정적 접근이나 정치적 프레임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그가 과거 청계천을 반대했을 때와 무엇이 다른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지 말라’는 주장에는 대안도 미래도 없다.

서울시는 이번 사업을 통해 종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묘와 함께 어우러지는 도시의 새로운 생태축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종묘에서 멀어질수록 단계적으로 높아지는 건물 설계를 통해 경관 조화를 꾀하고 있으며, 기존의 흉물로 방치된 세운상가 일대를 도시의 활력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시민의 삶과 문화유산이 동시에 숨 쉴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갈등 관리적 접근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다. 자원의 배분, 가치관의 충돌, 문화와 산업 간의 균형 문제 등 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다. 그 복잡함을 풀어내기 위해 우리는 법이라는 기준을 만들고, 사법(司法)이라는 권위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도 누군가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법을 바꾸고 판례를 무시한다면, 앞으로 누구도 ‘공정한 절차’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이 사회의 시스템은 그렇게 무너진다.

2003년 개봉한 SF 재난 영화 ‘코어(The Core)’를 보면 “정교한 엔진을 만드는 데는 수많은 시간이 들지만, 그 엔진을 망가뜨리는 건 간단해. 볼트 하나만 넣으면 되거든”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하수(下手) 중의 하수에 속한 방책이다. 누군가 시간을 쏟아부어 만든 노력의 산물을 망치는 짓도 하수 중의 하수에 속할 뿐이다. 

소위 ‘종묘대전’이라고 하는 종묘 일대 보존과 도심재생 논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발이냐 보존이냐’가 아니라 ‘기준에 따라 조정하고 합의하는 자세’다. 정부는 갈등을 중재할 권위가 있되 그 권위를 법 위에 둘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