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가에 빼앗긴 땅과 청춘”… 서산개척단의 끝나지 않은 싸움

정영철 서산개척단 진상규명대책위원장 서산개척단 사건 60여년 만에 국가 배상 책임 판결 전국 고아·부랑인 강제수용해 맨손으로 폐염전 개간 ‘인권침해’ 인정받았지만 ‘재산권’ 문제 여전히 남아 “맞아가면서 만든 땅… 해결되기 전엔 죽지도 못해”

2025-11-13     김민희 기자
[천지일보=배다솜 기자] 정영철(83) 서산개척단 진상규명대책위원장이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11.13.

[천지일보=김민희·배다솜 기자] 충남 서산 인지면 모월3리. 넓은 들판에 통통히 여문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모월리 일대는 허리까지 잠기는 뻘밭이었다. 1961년 정부는 서산에 개척단을 세우고, 전국의 고아·부랑자·전과자 등 1700여명을 강제로 수용해 삽과 곡괭이로 폐염전을 개간하게 했다. 폭행과 강제노역으로 119명이 숨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22~2023년 조사 끝에 서산개척단 사건을 ‘국가가 자행한 집단 인권침해’로 결론지었다. 지난달 법원은 피해자와 유족 112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총 118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배상액은 입소 기간 하루당 15만~20만원을 기준으로 산정됐다.

60여년 만에 국가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지만 피해자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피땀으로 일군 땅의 소유권 문제가 남은 것이다. 정영철(83) 서산개척단 진상규명대책위원장은 배상 판결 후 천지일보와 만나 “강제로 끌려와서 맞아가며 만든 땅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배다솜 기자] 정 위원장이 개척단 시절 일군 땅 위에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5.11.13.

◆“국가에 송두리째 뺏긴 청춘”

정 위원장은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내 평생의 10분의 1은 부모 밑에서 컸고, 그 외에는 국가에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겼다”고 말했다. 그는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내려왔다. 전쟁고아로 영화숙에서 지내다 도망쳐 나와 시장에서 구두닦이를 했다. 5.16군사정변 이후 군부 세력에 붙잡혀 전남 장흥을 거쳐 서산개척단으로 끌려왔다. 1962년 2월 3일 그는 열아홉에 개척단 2기생으로 입단했다.

정 위원장은 “북한 아오지탄광보다 무서운 데가 서산개척단이었다”고 말했다.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그는 ‘벙어리’가 돼야 했다. 입을 열면 ‘도주 공모했다’고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강제 결혼까지 해야 했다. 부랑인을 윤락여성과 결혼시켜 사회 정화를 이룬다는 명분이었다. 남성 막사와 부녀 막사 인원을 줄 세워 같은 번호끼리 짝지어 결혼시켰다. 정 위원장은 자신과 같은 7번을 뽑은 여성에게 ‘기회만 있으면 도망 보내주겠다’고 약속하며 울음을 달랬다.

◆“박정희한테 받은 땅 전두환에게 빼앗겨”

서산개척단이 해체된 뒤 200명은 남아서 땅을 분배받았다. 시로부터 ‘가분배증’을 받아 1인당 3000평씩 줄을 대서 나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 소유지이니 임대료를 내라는 고지서가 날아왔다.

“강제로 잡혀 와서 맞아가며 만든 땅인데 왜 임대료를 내야 하는 건지 참 황당했지. 나중엔 불법 점유했다고 변상금까지 내라는 거야. 우리가 땅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저들이 땅을 준다고 해놓고….”

[천지일보=배다솜 기자] 정 위원장이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11.13.

정 위원장은 직불금을 받아 임대료를 내고 5년간 변상금을 치렀다. 그러던 중 논 한가운데 도로가 생기면서 300평은 보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다른 데는 길이 나면 보상금이라도 받는데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했다”며 “이러다 3000평 다 뺏기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개척단 터에 남은 피해 생존자들은 20년 상환을 조건으로 땅을 매입했다. 정 위원장은 “지금도 자식들이 대신 갚고 있다. 1년에 800만원씩 20년째 상환 중”이라며 “박정희한테 받은 땅을 전두환이 빼앗아 갔다”고 토로했다.

◆다시 세상에 드러난 개척단

모월리에서 ‘개척단’은 입에 올리지 못하는 단어였다. 정 위원장은 ‘개척단 놈들 소리 안 듣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았다. “내가 이 세상한테 피해를 당했으면 당했지 내가 이 세상에 피해 준 일은 없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지. 죄가 있다면 나한테 보호자가 없다는 거였어.”

세월이 흘러 개척단 사건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방송국 PD의 제보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면서 오랜 세월 묻혔던 사건이 공론화됐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이었다. 진실화해위 조사 과정에서 108명이 긴 시간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정 위원장은 자발적으로 참고인 진술에 나섰다.

“2세대는 개척단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나는 애들이 충격받을까 봐 이야기도 못 했는데 어떻게 조사를 하겠어. 내가 참고인으로 다 조사받을 테니 애들한테는 묻지 말아 달라고 했어. 걔들이 아는 건 배고팠던 것뿐이라고.”

[천지일보=배다솜 기자] 정 위원장이 개척단 막사가 있던 곳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11.13.

진실화해위는 조사 끝에 ‘국가기관이 국민의 인권을 총체적으로 침해한 사건’이라는 취지의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대한법률구조공단은 2023년 10월 피해자와 유족 112명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9월 60여년 만에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이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인권침해의 책임을 확인했을 뿐 피해자들이 피땀으로 개간한 땅의 권리는 회복되지 않아서다.

“밤에 잠이 안 올 때 과거를 떠올려보면 내 팔자가 참 파란만장하구나 싶어. 국가가 내 청춘을 송두리째 뽑아간 거야. 그러니 얼마나 억울하겠어. 이제 내가 할 일은 논·땅 문제 해결 짓는 거야. 돈을 다 가져가도 좋으니 빼앗아 간 내 땅을 돌려달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