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사설] 총성 없는 전쟁, 두뇌 겨눈 중국의 하이브리드 전략

2025-11-12     천지일보

중국이 한국의 과학 인재를 정밀하게 노리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천인계획(千人計劃)’을 앞세워 한국 과학자 개개인의 연구 분야, 가족 상황, 연봉 수준까지 세밀히 파악한 뒤 수십억원대 연구비와 고연봉을 내세운 맞춤형 영입 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KAIST와 국가출연연구기관 연구자들에게만 700건이 넘는 초빙 메일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단순한 인재 유치가 아니라 체계적·데이터 기반의 포섭 작전으로 봐야 한다.

표면적으로 ‘천인계획’은 해외 과학기술 인재를 초빙해 공동 발전을 도모한다는 인재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계획은 2008년 출범 이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군민융합(軍民融合)’ 전략, ‘초한전(超限戰)’이라 불리는 중국식 하이브리드전의 일환으로 발전해 왔다. 즉 총칼이 아닌 지식과 인재, 기술을 무기로 삼는 비군사적 전쟁이다.

중국은 과학자 영입을 통해 경제력·기술력·군사력의 삼각축을 보완하고 장기적으로 세계 기술 표준과 정보망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두뇌 전쟁’이다. 중국은 해외 인재를 흡수해 자국 내 연구소·대학에 배치하고 민간 연구 결과를 군사·산업 기술로 전환하는 ‘군민융합’ 체계로 흡수한다.

일대일로가 인프라와 자본을 통해 세계 각국의 길과 항만을 연결하는 ‘지리적 확장 전략’이라면 천인계획은 인재와 지식을 매개로 각국의 연구 생태계를 연결·흡수하는 ‘지적 확장 전략’이다. 두 전략은 모두 ‘중국 중심의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동일한 목표 아래 작동한다.

문제는 한국이 이런 흐름에 지나치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영입 제안은 단순한 금전적 유혹이 아니라 한국 과학기술 시스템의 약점을 정밀 타격한다.

낮은 연구비, 정년 불안, 인프라 부족, 그리고 리더 연구자 중심의 폐쇄적 구조가 그 틈새다. 젊은 연구자는 생계와 연구비 문제로, 중견·석학 연구자는 정년과 자문 기회 부족으로 흔들린다. 중국은 이를 ‘약한 고리’로 간파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두뇌 유출을 개인의 선택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지금의 천인계획은 단순한 인재 이동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전략적 자원 이전에 가깝다. 과학기술이 경제와 안보의 핵심인 시대에 연구자의 이동은 곧 국가 경쟁력의 이동이다.

한국도 인재를 ‘국가 자산’으로 인식하는 전략적 관점이 필요하다. 과학자에게 합당한 대우를 제공하고 안정된 연구 환경과 세대 간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외국 정부나 기관의 리크루팅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과 보안·윤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