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포드’ 항모 뜨자 베네수 軍총동원령… 카리브해 ‘격랑’

미·베네수 군사긴장 최고조 미국 최신 항모 중남미 진입 “마약 범죄조직 해체에 기여” 핵잠수함 등 대규모 전력 이동 마두로 ‘軍 대규모 동원’ 선언 “美, 베네수 정권 교체 시도” 러 무기 배치·게릴라전 준비 ‘장기 저항·무정부화’ 이중 전략

2025-11-12     이솜 기자
미 해군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함이 지난 9월 17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의 네소드덴과 뵈그되(비그되이) 인근 오슬로피오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 해군의 최신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 전단이 카리브해에 진입하며 중남미 지역에 대규모 미군 전력이 집결한 가운데 베네수엘라도 이에 맞서 대규모 병력과 무기, 민병대를 동원한 전면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양측이 서로를 ‘위협’으로 규정하며 무력 시위를 강화함에 따라 미·베네수엘라 간 긴장이 급속히 고조되는 양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미 해군은 제럴드 포드 항모 전단이 중남미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포드 항모의 배치를 명령했으며 이는 이미 카리브해에 배치된 군함 8척, 핵잠수함, F-35 전투기에 추가되는 전력이다.

2017년에 취역한 포드함은 미국의 최신 항공모함이자 세계 최대 규모로 5000명 이상의 승조원이 탑승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배치가 “마약 밀매를 방해하고 초국가적 범죄조직을 약화·해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권 단체, 비정부기구, 미국과 일부 중남미 정부들은 베네수엘라 정부와 군이 특히 서부 지역에서 마약 밀매 조직과 연계돼 있다고 비판한다. 해당 지역은 콜롬비아 반군인 민족해방군(ELN)이 활동하며 코카(코카인의 원료)가 널리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연계를 부인하며 콜롬비아 마약 밀매업자들과 싸우고 있다고 반박한다.

2013년부터 권력을 유지해온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군의 군사력 증강이 자신을 축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해왔다.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로 이어질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 주는 현상금을 두 배로 늘려 5천만 달러로 상향했다.

미군은 현재까지 카리브해와 중남미 태평양 연안에서 마약 운반선으로 의심되는 목표물에 대해 최소 19차례의 공습을 실시했으며 이 과정에서 76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중앙정보국(CIA)의 베네수엘라 내 작전 활동을 승인했다고 밝혔고 과거에는 베네수엘라 영토 내 공습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시사한 적도 있다. 다만 이후 행정부 관계자들은 “현재로서는 그런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이 포드함의 배치를 처음 발표했을 당시 마두로 대통령은 “만약 미국이 우리나라에 개입한다면 수백만의 무장한 남녀가 전국을 행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가운데 미군은 카리브해의 냉전 시절 폐기된 해군 기지를 재건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베네수엘라 내에서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장기적 군사 활동 준비를 시사한다.

다만 이번 포드 항모 배치는 훨씬 더 노골적인 미군의 대비 태세를 보여주는 조치로 평가된다. 미군이 보유한 항모는 단 11척뿐이어서 귀중한 전력으로 간주되며 통상적으로 작전 일정이 상당 기간 전에 확정된다. 따라서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의 돌발적 배치 발표는 이례적이었다.

핵 추진 장치를 갖춘 포드함은 F/A-18 슈퍼호넷 전투기, 조기경보기 E-2 호크아이 등 75대 이상의 군용기를 탑재할 수 있으며 항공 통제와 항해를 지원하는 첨단 레이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지원함으로는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노르망디호와 알레이버크급 미사일 구축함 토머스 허드너, 라미지, 카니, 루스벨트 등이 포함돼 있으며 이들은 대공·대함·대잠 작전 능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포드함의 도착으로 중남미 지역 내 미군 병력은 약 1만 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포드함 전단 이전에도 미군의 상당수 해상 전력이 이미 해당 지역에 배치돼 있었다. 여기에는 군함 3척으로 구성된 기동부대 이오지마 상륙준비단과 제22해병원정대가 포함돼 있으며 4500명 이상의 해병대원과 승조원, 3척의 이지스 구축함, 공격용 잠수함, 특수작전함, 유도미사일 순양함, 그리고 P-8 포세이돈 정찰기가 포함된다.

또한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에 F-35 전투기 10대를 배치했으며 로이터에 따르면 MQ-9 리퍼 무인기 3대도 주둔 중이다. 카리브해 작전에 대한 미군의 중점적 관심 속에 푸에르토리코는 사실상 전력 허브로 부상했다.

이와 별도로 미군 약 5000명이 푸에르토리코에 주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볼리바르 민병대 대원들이 9월 20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군사훈련 중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베네수, 2시간도 못 버틸 것”

현재 베네수엘라는 수십년 된 러시아제 무기를 포함한 무기들을 배치하고 있으며 미군의 공습 또는 지상 침공 시 게릴라식 저항을 벌이거나 혼란을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날 베네수엘라 정부는 카리브해에 미군 군함과 병력이 집결하고 있는 데 대응해 ‘대규모 동원’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CNN 방송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은 “육·해·공군과 예비군이 12일까지 전역에서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이번 배치를 ‘미국의 제국주의적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로페스 장관은 이번 훈련 명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직접 지시라고 밝혔다.

베네수엘라의 정규군인 볼리바르 국가군(FANB)은 약 12만 3000명 규모로 알려져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자발적 민병대 예비군이 800만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했으나 전문가들은 이 수치와 병력의 실제 훈련 수준 모두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훈련 부족과 낮은 임금, 노후한 장비로 인해 베네수엘라군은 미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세에 처해 있다.

베네수엘라는 2000년대 러시아로부터 수호이 전투기 약 20대를 도입했으나 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미국의 B-2 폭격기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러시아제 헬리콥터, 전차, 저고도 항공기 격추용 휴대용 미사일 역시 모두 구식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주 베네수엘라의 요청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며 긴장 고조를 피할 것을 촉구했다. 마두로는 모스크바에 수호이 전투기 정비, 레이더 시스템 업그레이드, 미사일 체계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베네수엘라가 이미 러시아제 견착식 대공미사일 ‘이글라’ 5000기를 배치했다고 다른 소식통은 전했다. 군 지침에 따르면 “미군으로부터 첫 공격을 받는 즉시 모든 부대는 무기를 들고 분산 이동하거나 은폐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마두로 정부는 두 가지 전략에 기대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고위 당국자들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게릴라식 대응’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또 다른 비공개 전략이다.

‘장기 저항(prolonged resistance)’으로 불리는 게릴라식 방어 전략은 국영 TV 방송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작전 문서에 따르면 전국 280개 이상 지역의 소규모 군 부대가 파괴 행위와 기타 게릴라 전술을 수행하도록 계획돼 있다.

두 번째 전략인 ‘무정부화’는 정보기관과 무장한 여당 지지 세력을 이용해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한 도시에서 혼란을 조성하고 외국군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맞도록 만드는 방식이라고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두 전략은 상호보완적이며, 실제로 언제 실행될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도 이러한 전략들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인사는 로이터에 “정규전이라면 (베네수엘라가) 두 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최근 몇 주 동안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이웃국 콜롬비아 간에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서로 비난을 주고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페트로 대통령을 “불법 마약 지도자”라고 부르며 제재를 가했고, 좌파 성향의 페트로 대통령은 미군의 공습을 “살인 행위”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