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항소 포기에 뒤집힌 검찰… 집단 항명에 노만석 체제 벼랑 끝
전국 檢, 항소포기에 집단 반발 집단 성명에 ‘검란’ 조짐도 정성호, 외압 논란에 선그어 노만석-법무부 책임공방 격화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1심 선고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이 검찰 조직 전체를 뒤흔드는 초유의 집단 반발로 번지며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대검 차장검사) 체제가 정면 위기를 맞고 있다. 항소 포기 배경에 대한 노 대행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전국 검사장·지청장·대검 간부·검찰연구관까지 연쇄적으로 공개 문제 제기에 나섰다. 일부 간부들은 노 대행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며 사태는 사실상 ‘수뇌부 거취 문제’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둘러싼 검찰 내부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논란은 대장동 사건 1심 일부 무죄와 관련해 수사·공판팀이 만장일치로 항소 필요성을 보고했음에도 서울중앙지검장이 항소 제기를 승인했음에도, 최종적으로 대검이 항소를 포기한 과정을 둘러싼 불투명성에서 출발했다. 항소 시한 마감 약 4시간 전까지 항소 준비가 진행됐다는 구체적 정황이 내부에서 공유된 가운데, 항소 포기 지시가 어떻게, 누구의 판단과 조율을 거쳐 내려졌는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의혹과 반발이 일거에 분출했다.
노 대행은 지난 9일 언론 공지를 통해 “대장동 사건은 통상의 중요 사건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입장에는 ▲법무부와의 소통 방식과 시점 ▲수사·공판팀과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이 어떻게 수용·조정됐는지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구체적 법리 검토 과정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등의 지적이 제기됐다.
10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는 박재억 수원지검장,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등 18명 검사장 명의의 입장문이 게시됐다. 이들은 “일선 검찰청의 공소유지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검사장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항소 포기 지시에 이른 경위와 법리적 근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다시 한번 요청드린다”며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이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두고 검찰 내부뿐 아니라 온 나라가 큰 논란에 휩싸였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검찰 수뇌부를 향한 공개적인 문제 제기이자, 조직 단위에서 보기 드문 집단 항의였다.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 역시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앙지검장·권한대행 입장문과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수사·공판팀의 ‘만장일치’ 항소 필요 보고가 “합리적 설명 없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12개 부치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동참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수년간 국민적 관심 속에 진행돼 온 중대 부패 사건에서, 직접 공소유지를 담당한 수사·공판팀의 의견이 배제된 것으로 비치는 결정을 용납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밝혔다. 일선 지청이 무죄 선고나 부당한 양형을 접할 때마다 사실관계와 법리를 재검토해 항소 여부를 판단해온 관행을 상기시키며 중요 사건에 대한 항소 포기 이유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침묵이 아닌 투명한 설명과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검찰 내부 반발은 조직 상층부로 곧바로 번졌다. 대검 검찰연구관들은 전날 노 대행과의 면담에서 이번 결정을 “검찰의 핵심적인 기능인 공소유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결과”라며 “거취 표명을 포함한 합당한 책임을 다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검 부장(검사장)들 또한 내부 회의에서 노 대행에게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지휘의 최전선과 대검 참모진이 동시에 권한대행의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다.
노 대행은 이런 집단 성명과 사퇴 요구에도 10일 대검 출근길에서 ‘법무부 장·차관의 항소 포기 지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다음에 말씀드리겠다”고만 언급하며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항의 방문한 대검 연구관 등과의 자리에서 “용산이나 법무부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에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오히려 논란은 증폭됐다. 이 발언은 항소 포기 판단 과정에서 ‘관계 고려’가 작용했음을 시사하는 듯한 인상으로 받아들여졌고 검찰 내부에서는 정치적 외풍과 조직 자율성 침해 의혹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항소 포기 관련 외압 의혹을 부인하며 진화에 나섰다. 정 장관은 법무부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대검에 항소 포기를 압박했다는 의혹에 대해 “신중히 판단하라고만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노 대행과 통화한 적이 없으며 “신중 검토 의견”은 법무차관 등 참모들에게 공개된 자리에서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1심에서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이 선고되는 등 항소 기준을 초과하는 형이 선고된 점, 검찰이 계속 이 사건에 매달리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판단 등을 언급하며 자신의 인식을 피력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항소 포기 직후 대장동 수사팀은 “검찰 지휘부가 항소를 막았다”고 폭로하고, 서울중앙지검장이 “중앙지검의 의견을 설득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며 사의를 표한 흐름과 맞물리면서 현재의 집단 성명과 사퇴 요구는 단순한 절차 논란을 넘어 ‘수사·공판 라인의 전문적 판단 vs 지휘부의 정치적 고려’라는 구조로 인식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