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칼럼] 자연에 결정권 넘겨주기, 재자연화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대 대선 당시 공약집에 ‘한반도 생물 다양성 복원’을 약속하며 ‘4대강 재자연화(Rewilding)’란 표현을 썼다. 4대강 보를 열어 강이 자연스레 흐르도록 되돌리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근 최승호 PD가 제작한 다큐영화 ‘추적’ 시사회 현장에서도 “4대강 재자연화로 맑은 물 먹어보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관련 시민단체의 ‘4대강 재자연화 10만인 서명운동’도 진행됐다.
‘4대강의 재자연화’는 단순한 환경 복원 사업이 아니라, 한국에서 인간 중심 개발의 한계를 넘어 생태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재자연화’란 단어를 처음 고안하고 사용한 것은 1991년 미국의 자연보전 운동가 데이브 포먼으로 알려져 있다.
보전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이클 술레가 이후 포먼의 아이디어를 체계화해 ‘리와일딩 선언문(1998년)’을 발표하는데, 핵심 개념을 3시(C), 즉 핵심지(Core)와 통로(Corridor) 그리고 포식자(Carnivore)라고 정의한다. 훼손된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넓은 서식지와 이를 긴밀히 잇는 통로, 그리고 최상위 포식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훼손된 자연 생태계를 다시 ‘야생 상태’에 가깝게 되돌리는 노력이 리와일딩(Rewilding)이라는 개념에 녹아 있다. 즉 인간 활동으로 파괴되거나 단절된 생태계를 야생으로 복원하는 것이 재자연화인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자연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 즉 ‘야생(Wildness)’의 회복에 있다. 인간이 통제하는 복원이 아니라 자연이 주도하는 복원의 의미다. 이는 자연의 ‘자율성’과 ‘야생성’을 되찾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재자연화는 자연을 다시 야생으로 되돌려 자연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며 인간이 만든 질서를 뒤로하고,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생태철학인 셈이다. 야생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혼돈’이 아니라, 스스로 균형을 이루는 질서로 본다.
그래서 리와일딩은 ‘자연을 통제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자원이 아니며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고 지배할 권리가 없다는 사고가 전제돼 있다. 자연은 인간의 이익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존재 가치가 있으며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서 공동체의 일원이며, 인간은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고, 다른 생명체와 평등한 존재라는 사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재자연화의 철학적 배경은 인간 중심에서 생명 중심으로 생태문명전환을 추구하는 생태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태중심주의(에코센터리즘)라고 정의하지만 생태계에는 중심이란 게 없으니 생태주의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재자연화(리와일딩)의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사례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복원 프로젝트다. 늑대가 멸종한 뒤 엘크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 생태계가 심각한 불균형에 빠지자, 늑대를 공원에 재도입해 사슴의 개체수를 조절한 사업이다.
그 결과 엘크의 서식 범위가 좁아지고, 강가에 버드나무·사시나무가 다시 자라 나무가 울창해지자 새와 비버, 수달 등이 연이어 돌아와 강의 생태계가 회복됐다. 지리산의 반달가슴곰, 소백산의 붉은 여우 종복원 사업 등도 같은 일환이라 할 수 있겠다.
재자연화(리와일딩)의 생태학적 원리는 ‘자연 스스로 복원하는 힘’에 있다. 이는 “자연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생태학의 믿음에 기초한다. 모든 생태계는 먹이사슬이란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균형을 유지한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면 초식동물이 늘고, 식물이 줄고, 강과 토양이 변한다. 따라서 정점 포식자를 되돌려야 생태계가 제 기능을 회복한다는 생각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복원 사례도 이러한 이치에 근거한다.
또한 생태계는 고립돼선 유지되지 않는다. 댐, 도로, 도시화로 끊긴 생태 회랑(ecological corridor)을 복원해 동식물이 이동하고 유전적으로 다양성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 보를 철거하고 끊어진 4대강을 이어 물을 흐르게 하려는 이유도 궁극적으론 여기에 있다.
생태계는 스스로 변하고 진화한다. 화산 폭발이나 산불 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숲이 자란다. 재자연화는 인공적인 간섭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천이 과정을 존중한다. 인간의 간섭 없이 잡초가 자라고, 관목이 자라며, 숲으로 돌아가는 자연 순환을 믿는다.
또한 다양한 종이 있을수록 생태계는 안정적이고 복원력이 커진다. 그래서 리와일딩은 희귀종 보호보다 전체 생태계의 다양성, 즉 생물다양성 복원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재자연화는 “야생을 되살리는 생태 복원”이자,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를 다시 묻는 철학적 실천”이다.
자연은 인간이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생명체이며, 리와일딩은 그 ‘자율성’을 존중하는 윤리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