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한국 천재의 미국 망명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중국 고대의 죽림칠현(竹林七賢) 고사나 고려 말 두문동72현(杜門洞七十二賢)에 대한 사연은 모두 정치를 피해 은거한 선비들의 얘기를 담고 있다. 학정이나 정치변혁을 피해 자연에 은거하면서 시가로 유유자적하게 살아 후대에서는 사람들이 이를 동경하고 미화 했다.
고려가요 ‘어부가’는 고기 잡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뱃사람들의 노래였다.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 외딴 섬으로 귀양을 간 사류들의 심경에 맞아 지지를 받게 된다.
조선 중엽 고산 윤선도는 전라남도 보길도로 귀양을 가 십 수년 살았는데 어민들과 허물없이 친구가 돼 우리말을 섞은 명작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국문학자들은 이 시조를 어민들의 삶과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희망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노래’라고 평했다. 어부사시사는 어민들의 삶과 고난을 잘 표현했으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명작이라고 해석했다.
어부는 일생 파도와 싸우며 생계를 위해 애쓰는 서민들이다. 고산은 이들의 외로운 심경과 힘겨움을 흥으로 사위었다. 파도와 싸우는 어민들의 삶이 파란만장한 선비들의 일상과 같게 느껴진 것인가.
윤선도는 귀양지 보길도를 떠나지 못하고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 평생을 살았다. 그는 음악을 사랑해 평소에 가야금을 타며 살았는데 ‘고금영(古琴詠)’이란 노래가 백미다.
‘버려졌던 가얏고를 줄 얹어 놀아보니 / 청아한 옛 소리가 반가이 나는 구나 / 이 곡조 알 이 없으니 집에 껴 놔두어라.’
예부터 한 나라가 망하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지식인들의 엑소더스가 일어난다. 핍박을 피해 산간으로 숨거나 혹은 해외로 망명한다. 망명은 생명·신체·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때 다른 국가에 보호를 요청하는 행위와 그에 따른 법적 보호를 뜻한다.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에게 패전한 백제의 수많은 귀족들이 보트피플이 돼 일본으로 망명했다. 삼국가운데 가장 문화가 발전했던 백제의 지식인과 기술자가 일본으로 망명함에 따라 한반도는 문화의 공백기가 됐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후에 일본이 큰 번영을 이룬 것은 백제 기술자들이 대거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높은 IQ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 김영훈(36)씨가 미국 망명을 신청했다는 신문보도는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우리에게 매우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김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1분 35초 분량의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망명사유를 밝혔다.
‘한국 정부는 애국자를 처벌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찬양한다(Korean government punishes patriots, glorifies communists). 진리는 범죄가 되었고 신앙은 표적이 됐다(Truth has become a crime, and faith has become a target). 신앙이 박해받지 않고 보호받는 미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겠다.’
주말이면 서초동, 홍대일대, 대림동, 여의도에는 20~30대 젊은이들의 반정부 시위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친중 사회주의에 대한 경계심과 특검의 종교인 체포, 시설에 대한 수색 등 강경일변도에 대한 반발이다.
세계 젊은이들의 부러움을 산 자유대한민국이 왜 이 지경에 이른 것인가. 이번 주말에도 케데헌의 열풍으로 인천공항에는 수많은 외국관광객들이 입국, 인산인해를 이뤘다.
천재의 망명으로 인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정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치른 나라 위상답게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