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in] “국가조찬기도회, 박정희 대통령도 ‘타락’ 경고했었다”

‘매관매직’ 이봉관‧이배용 특검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 취소 “정교유착 상징” 폐지론 확산

2025-11-06     임혜지 기자
국내 주요 교회들이 모여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을 초청해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기도하는 '국가조찬기도회'가 올해 역사상 처음으로 무산됐다.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이봉관 회장 등이 매관매직 같은 권력 비리 혐의를 받으면서 기도회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했기 때문이다. 교계에서는 기도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지난 2019년 6월 17일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DB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국내 개신교계의 대표적 행사인 ‘국가조찬기도회’가 올해 정교유착 논란 속에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무산됐다. 6일 교계에 따르면 올해 국가조찬기도회는 당초 지난 4일로 예정됐었지만 회장단 인사들이 잇따라 권력 비리 의혹에 연루되면서 행사가 취소됐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가 개최하는 행사로 국내 주요 교회들이 모여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을 초청해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위한 기도회를 여는 모임이다. 1948년 5월 제헌국회 임시의장을 맡은 이승만 전 대통령 제안으로 모든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라를 위해 기도한 것을 시초로 한다.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로 정식 출범했고, 이후 1975년을 제외하고 매년 빠짐없이 열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매년 열리는 이 행사에 전통적으로 참석해왔다. 올해는 이재명 대통령의 참석도 예정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반에는 정치적 성격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점차 교계 지도자와 정관계 인사들이 친분을 쌓는 자리로 변질됐다는 지적과 함께 정교 유착 논란을 받아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제56회 국가조찬기도회 제11대 회장을 지낸 서희건설 회장 이봉관 장로가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의 명품 목걸이를 건네고 사위 인사를 청탁한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으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부회장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 역시 김 여사에게 ‘금거북이’ 등 고가 선물을 전달한 정황이 확인돼 압수수색을 받는 등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다.

◆ “권력·재물 타락 보여준 기도회”

교계에서는 국가조찬기도회 폐지론이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 9월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계 단체가 주최한 ‘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행태에 대한 회개와 원인 규명’ 연속토론회에서도 국가조찬기도회를 재조명하는 발제가 나왔다. 이날 ‘한국교회의 우상숭배’를 주제로 발표한 권수경 목사(일원동교회)는 “국가조찬기도회는 출발부터 정치와 종교 유착, 권력 숭배 위험을 안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권 목사는 국가조찬기도회의 초창기 설립 취지문에 담긴 ‘협력·연대·섬김·나눔’의 정신이 실제로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제1회 국가조찬기도회에 불참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언을 주목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믿음이 있으면 은밀한 가운데 기도해야 하며 현관(顯官·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호화로운 기도회를 갖는 것은 기독교 정신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또 “기독교를 믿는 정치인들이 종교를 남에게 보이기 위해 이용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타락하고 정치도 망한다”고 경고했다.

권 목사는 “비록 박 전 대통령이 2회째부터는 참석했지만, 그의 말은 지금 들어도 예리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가조찬기도회가 이후 성경적 가치를 위반하는 정치 지도자들을 교계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장이 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1980년 8월 6일 열린 ‘전두환 국보위원장을 위한 기도회’에서 정진경 목사는 설교를 통해 전두환을 ‘여호수아’에 비유하며 축복했다. 이어 그해 9월 30일에는 전두환 대통령 당선 축하 조찬기도회가 열렸고 2014년에는 김삼환 목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고레스 같은 하나님의 일꾼”이라 칭송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 

국가조찬기도회는 2003년 사단법인으로 등록되기 전까지 한국기독실업인회(CBMC)가 준비와 실행을 맡아왔다. CBMC는 1967년 창립돼 1973년 제1차 전국대회를 열었으며 기업가와 정치인을 잇는 네트워크 역할을 했다. 권 목사는 “기도회 자체가 정치인과 기업인을 연결하는 자리였고 임원 대부분이 CBMC 회원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권력과 돈의 유착이 강화됐다”고 했다.

그는 특히 “김인득 장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가 된 이후 CBMC 회장에 오르면서 정교유착이 더욱 공고해졌다”며 “복음을 전한다는 명분 아래 권력과 자본이 손을 잡은 현실이 지금의 조찬기도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오랜 기간 국가조찬기도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해온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와 부정청탁 혐의를 받고 있는 이봉관 회장 등에 대한 특검 수사에 대해서는 “국가조찬기도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정경유착과 비리에 연루된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경고일 수 있다”며 “권력·재물·이념 숭배가 뒤섞인 현실을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폐지해야” vs “순수성 회복하면 돼”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아현감리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언론포럼 주제 역시 ‘국가조찬기도회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상민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공동대표는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없이는 국가조찬기도회를 지속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교회에 유해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의 국가조찬기도회는 대통령 앞에서 기독교의 위세를 과시하는 행사로 전락했다”며 “정교 분리 원칙이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 참석은 기독교 정신에도 맞지 않고 기도회 성격과도 안 맞음으로 폐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조찬기도회의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역할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상임대표 김철영 목사는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기독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모여 기도하던 것이 국가조찬기도회의 원형”이라며 “사단법인 체제의 국가조찬기도회를 재정비해 본래의 역사성과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장을 지낸 권혁률 장로는 “국가조찬기도회라는 이름 자체가 정치적 이미지와 맞물려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있다”며 “명칭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로 바꾸거나, 부활절연합예배처럼 국회조찬기도회와 공적 연합기관이 공동 주최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구조 개편을 통해 정치적 편향 논란에서 벗어나고 기도회의 공공성과 신앙적 순수성을 동시에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