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관객 만날 때 완성”… 나다움과 책임의 여정

문혜인·류현경 배우 겸 감독 문혜인 감독 빛으로 그린 ‘나다움’의 세계 작품, 삶 비추는 감각의 언어 상처를 넘어 회복으로 나아가 류현경 감독 현장을 이끄는 리더의 책임 감정의 진심에서 균형으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선 도전

2025-11-07     이봉화 기자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이 지난달 27일 닷새간의 일정을 마쳤다. 사진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문혜인(왼쪽)·류현경 감독이 관객과 만나 영화의 의미와 창작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제공: 남도영화제집행위원회) ⓒ천지일보 2025.11.07.

[천지일보 광양=이봉화 기자]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문혜인·류현경이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을 통해 스크린 안팎의 새로운 여정을 선보였다. 두 사람은 “영화는 관객을 만나 완성된다”는 믿음 아래 각자의 시선으로 ‘나다움’과 ‘책임’의 의미를 풀어냈다.

삶과 현장을 마주한 두 감독의 여정은 예술이 결국 자신을 비추고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빛으로 회복을 그리다

문혜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 ‘삼희: The Adventure of 3 Joys’는 상처를 끌어안은 인물이 스스로를 회복해 가는 여정을 그린다. 감정의 해석이나 명확한 교훈을 강요하기보다 관객이 주인공의 감정과 감각을 따라가며 회복을 ‘체험’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 감독은 앞선 단편 ‘트랜짓(Transit)’에서도 트라우마를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비췄다. 주인공 미호는 트랜스젠더 조명기사로 “내가 좋아하는 일과 빛 속에서 나를 증명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별은 바뀌어도 자신을 빛으로 비추는 감각과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천지일보 광양=이봉화 기자]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이 지난달 27일 닷새간의 일정을 마쳤다. 사진은 장편 데뷔작 ‘삼희: The Adventure of 3 Joys’로 배우상을 받은 문혜인 배우 겸 감독 인터뷰 모습. ⓒ천지일보 2025.11.07.

‘삼희’의 주인공 혜림은 독립영화 촬영 중 겪은 사고 이후 번아웃에 빠져 서울을 떠나고 낡은 신도시 외곽의 ‘삼희아파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혜림이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일종의 심리적 장치로 등장한다. 그녀는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일상의 소소한 감각들을 포착하며 ‘삼희’라는 또 다른 자아와 마주한다. 결국 이 영화는 상처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품고 살아가는 존재의 회복을 그리며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나다움이 비롯된다”는 감독의 신념을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문 감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정체성이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며 “이 영화가 단순한 교훈보다 감정과 회복의 감각으로 다가가길 바랐다. 나다움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응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감독은 창작의 영감이 어디에서 비롯되느냐는 질문에 “제 삶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일상 속 순간들, 특별한 감각을 주는 장면들을 포착하는 게 작업의 출발점”이라고 답했다.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이 지난달 27일 닷새간의 일정을 마쳤다. 사진은 ‘삼희: The Adventure of 3 Joys’의 한 장면.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 2025.11.07.

반복되는 일상이 도돌이표 같다고 느껴 같은 제목의 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삶에서 마주한 사건이나 감정이 언젠가는 영화가 된다”며 “가족과 관계, 시간처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결국 창작의 원천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문 감독은 “창작자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며 “오히려 현재를 잘 잡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고 덧붙였다.

광양 출신인 문 감독은 201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뒤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2017),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2019),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감독상(2022)을 거쳐 이번 남도영화제에서 ‘삼희’로 배우상을 받았다.

◆연기에서 연출로, 책임의 무게

류현경 감독은 이번 남도영화제 토크 콘서트 ‘배우, 감독하다’에서 조은지, 문혜인 감독과 함께 무대에 섰다. 연기와 연출을 함께하는 류 감독과 문 감독은 배우로서의 경험을 스크린 밖의 창작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류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고백하지마’는 촬영 뒤풀이 자리에서 시작된다. 영화 속 두 배우 충길과 현경은 함께 작업한 영화 ‘하나, 둘, 셋, 러브’를 마친 뒤 뒤풀이 자리에서 미묘한 감정을 드러낸다. 충길의 갑작스러운 고백은 현경에게 혼란을 남기고 세 달 뒤 부산에서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진심을 마주한다.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이 지난달 27일 닷새간의 일정을 마쳤다. 사진은 ‘날강도’의 한 장면. (제공: 남도영화제집행위원회) ⓒ천지일보 2025.11.07.

즉흥적인 대화와 감정의 진폭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우연의 연속이 결국 운명이 된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관통한다. 류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각본·편집·출연까지 직접 맡아, 배우와 감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창작 실험을 시도했다.

류 감독의 연출 여정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홈비디오로 연출·각본·연기를 모두 맡은 단편 ‘불협화음’을 처음 제작했다. 이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연출을 전공하며 다수의 단편을 완성했다. 올해로 데뷔 29년 차를 맞은 그는 대중에게는 배우로 더 익숙하지만 창작의 시작은 이미 오래전부터 ‘감독’이었다.

이번 남도영화제에서는 첫 장편 연출작 ‘고백하지마’를 선보였다. 류 감독은 “배우로서 연출을 바라보는 시각과 연출자로서 현장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지만 결국 중요한 건 책임감”이라며 “연출은 리더의 자리이기에 스태프와 배우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현장을 이끌어야 한다. 배우일 때는 감정의 솔직함이 중요하지만 감독일 때는 균형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이 지난달 27일 닷새간의 일정을 마쳤다. 사진은 영화 ‘고백하지마’의 한 장면. (출처: 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 2025.11.07.

그는 이번 작품에서 연출과 각본, 편집, 출연까지 직접 맡아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류 감독은 “후반 작업이 가장 흥미롭다”며 “감독으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편집, 믹싱, 색 보정 등은 촬영보다 더 긴 시간이 들지만 작품이 완성되는 진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남도영화제가 해마다 열리며 장기적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며 “아름답고 이야기가 풍부한 남도에는 정말 멋진 곳이 많다”고 남도영화제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번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은 배우이자 감독으로 성장한 두 인물을 통해 지역 영화가 품은 가능성과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줬다.